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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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왕국 대한민국은 본질을 지킬 수 있을까?

2024-01-0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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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안의 한국 기행

▶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성형왕국 대한민국은 본질을 지킬 수 있을까?

도시구경과 지역파악을 위해서 걷는 것 다음으로는 마을버스가 제일 편하다. J.W. Marriott 호텔 맞은편 강남 성모병원 앞에서 승차한 ‘서초 13’ 버스는 서래마을과 서초 법원주위를 잘 보여주었고 마을버스들은 러시아워만 피하면 관광버스가 따로 없다.

두 달 넘는 고국여행을 다녀왔다. 요약하면 한국은 국뽕(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강요하던 나라에서 국뽕을 유도하는 선진국으로 변신했다. 크게 발전한 모습에 뿌듯한 감격을 느꼈다. 76년에 한국을 떠났으니, 실로 오랜만의 고국 여행이었다. 오랜 세월 앞만 보고 미국에서 살아왔던 와이프와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에 그 감회가 남달랐다.

나는 몸담아왔던 사업들을 이번에 정리했는데 몇 년 전에 공무원 직에서 은퇴한 와이프가 고국 여행하자며 노래를 불렀었다. 그때마다 사업을 하루아침에 접을 수도 없고 해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차에 좋은 사람이 나타나 드디어 고국여행이 성사됐다.

나는 여행보다는 여정(여행+과정)을 즐기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났기에 보상심리 같은 것이 존재했다. 우선 탑 여행사와 그렇게 좋다는 전국 맛집 투어를 했고, 그 후 여유로운 호캉스(호텔에서의 바캉스)를 즐기고, 길을 걷다 붕어빵과 떡볶이도 먹고, 목적지 없이 마을버스 타고 돌다 생각치도 못했던 새로운 체험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와이프는 내심 귀향도 고려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과연 영구 귀국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한번 떠난 집은 돌아가기 힘들다. 이번 여정이 그러한 결말을 내게 안겨주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고 색다른 체험을 즐겼다. 그 이야기들을 풀어나가 보겠다. 우선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지극히 주관적 시각인 점을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입니다”

인간의 재능은 타고난다고 하나 위업은 고난을 거쳐야한다. 국가 역시 선진국 대열에 입성한 나라모두 힘들었던 고난의 역사가 있다. 고난 하면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있을까? 저녁식사 자리에서 서울대 김범수 정치학 박사는 “한국은 이제 선진국입니다” 소주 한잔 들이키며 자신 있게 단정 지었다. 정치, 경제 등 모든 지표상 통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통계는 그렇다 치고 몸으로 느끼는 체감도에서 과연 한국은 선진국일까? 대다수 한인들은 국뽕이 강하다. 맹목적 믿음 또는 집착적 사랑이 사실 나는 부럽다. 무엇이든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국뽕에 빠지고 싶어도 안 되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는 너무 이성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가 이번 여행 중 거리를 걷다 거대한 통 유리 고층건물들 사이로 고엽에 뒤덮인 고궁 과 사찰들 그리고 나지막한 한옥들을 만나고 예의 바른 젊은이들과 깨끗한 거리 그리고 곳곳에서 엄청난 발전상을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허공을 바라보다 “아 ~ 대한민국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감사의 마음을 많은 한국분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 발전을 성취한 대한민국임에도 남산 타워 위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모습은 그다지 아름다운 자태는 아니었다. 성장과 발전 속에 우후죽순 들어선 획일성 아파트와 건물들, 그 도심 속에 바쁘게 움직이는 무표정의 군웅들, 한국은 여러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선이 필요한 대한항공과 착한 미주한인들


덜레스 공항 대한항공 라운지에서 대학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못 알아 볼만큼 젊어 보였다. 반면 나는 그에 비해 나이가 너무 들어 보였다. 몸에 착 감긴 셔츠와 명품 구두 그리고 잔주름 없이 반들반들 팽팽한 피부는 20대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매년 두세 번 한국을 드나든다고 했다. 젊은 시절 고가 스포츠카 몰던 은수저는 역시 다르다 말하자, 옆에 있던 부인이 절대 은수저 아니고 고생 많이 했다며 그를 대변한다. 미국 와서 고생했다는 레퍼토리는 우리 모두의 만국 공통어다. 영웅담처럼 하는 고생담은 성공한 사람일수록 심하다.

첫 부부 동반 고국 나들이길인 우리에게 몸에 두른 명품만 보아도 그는 은수저가 맞다. 비행기 탑승 때도 그들은 제일 먼저 탑승하고 비즈니스 석 에 앉았다. 어느 여행이든 비행기 탑승에서부터 클래스가 갈리는 모습이 슬프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고 좌석 뒤편으로 갈수록 손에 든 짐만큼 남자 마음은 무거워진다. 옆에서 아무 말 없던 와이프가 기내 조명이 커질 무렵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이번에 강남 가서 자기 처진 눈 해줄게.”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한항공의 기내 서비스는 옛날 같지 않았다. 미국 항공사보다 젊고 잘생긴 승무원들은 몸 빠르게 일은 효율적으로 처리했지만 팽팽한 얼굴 미소는 기내 찬 공기처럼 싸늘했고 할 말만 전하고는 ‘쌩’ 하게 사라지기 일쑤였다. 소등 후에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한국에서 깨달은 사실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과도한 나머지, 국민 모두 효율성에 너무 집착한 모습이다. 후덕했던 얼굴은 소멸되고 따뜻했던 가슴들은 얼어붙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기내 시설과 서비스에서 에미레이트를 필두로 싱가포르, 카타르, 터키항공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특히 대한항공의 허브(hub)이며 그들의 얼굴인 인천공항 라운지는 거의 도때기 시장 수준이었다. 오랜 기간 미주한인들에게 거의 독점사업을 하고 있는 대한공항이 서비스에서 얼마나 타 항공사와의 차별화에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나는 큰 점수를 줄 수 없다. 라면과 비빔밥 제공하는 수준에 안주하거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얼마 전 두바이에서 덜레스 구간 에미레이트 비즈니스 석을 사용했는데 대한항공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대다수 분들이 그러한 차이를 인지하지만 고국방문길만큼은 델타보다 대한항공이 ‘꽉’ 잡고 있다. 미국 항공사의 우악스러운 서비스에 익숙한 미주한인들. 그러나 이번에 국내선 대한항공을 김포공항에서 이용해보니 연착과 열악한 서비스는 미국 항공사들과 대동소이했다. 9-11과 코비드가 불러온 참혹한 서비스 추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택시기사들의 국뽕과 험담

한국이 자랑하는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짐을 찾고 곧바로 택시를 탔다. 그 과정이 마치 전기차처럼 스무스했다. 공항에서 심 칩을 안 사고 미국번호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한국번호가 꼭 필요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국 번호가 없으면 카카오 택시도 부를 수가 없다.

공항 검은색 모범택시 기사님은 70이 넘은 나이였고 그의 전화기로 서울대학 호암센터를 찍으니 네비에서 도착시간과 비용이 실시간으로 나왔다. 30년 기사 경력의 그는 우리가 말을 걸자 대화의 봇물이 터져 한국의 발전을 열정으로 설명했다. 이후 한국에서 접한 택시기사들은 대다수 국뽕이 강한 보수 노인들이었고, 진보성향의 젊은 기사들은 험한 욕설로 현 정권을 질타했다.

‘dialog(대화)’가 소멸된 한국의 양극화는 택시를 타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천지개벽 된 불야성의 송도를 지나칠 때 기사님이 “인천과 송도 딴 얼굴입니다”한다. 성형은 아름답게 보일 수는 있어도 본질을 바꿀 수 없다. 성형왕국인 대한민국은 본질을 지켜낼 수 있을까?

문의 jahn20@yahoo.com<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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