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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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4-01-06 (토)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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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젊은이들의 사고로 인한 죽음이 예사롭지가 않다. 워싱턴 DC에 근접해있는 버지니아 알링턴 구역에서의 젊은이의 죽음, 어린 나이에 엘리트 부모를 일찍 여윈 경우일 것이고 텍사스 주 헤리스 군에서 아프간 전 참전용사의 죽음 등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있었다.

물론 학업의 중압과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의 명문대생들의 자진(自盡)도 예외일 순 없으니 그들과 기성세대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급선무일 것이다. 한창 자라며 혈기 왕성할 10대 후반부터 20대 때 갖은 이유로 인해 뇌에 충격을 입을 때 여리고 연약할수록 충격파는 우리들이 상상 못할 극심한 지경까지 갈 것이다.

어제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옛날 영화를 보았다. 세계 1차 대전 독일 북부에 투입된 젊은이들 중 특히 17세 독일 소년 파울의 전쟁의 참혹한 경험으로 인해 인생이 갈기갈기 찢기는 이야기이다. 1,700만 명의 전사자 중 파울이 있었던 전쟁터에서만도 한 치의 땅을 뺏고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무모한 전쟁 놀음에 300만 명의 젊은이들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지금도 가자지구에서,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더 참혹한 것은 아녀자 민간인들의 전선 없는 전쟁터에서 무차별 살상이 다를 뿐, 더 악랄한 살육의 광란인 것이다.

전쟁이 없으면 자신들은 필요 없다고 한탄하는 직업군인 장군들이 있는가 하면, 승산 없는 전쟁을 아예 피하려는 장군들, 부하 장병들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휴전과 항복까지도 고려하는 장군들도 있음을 우리들은 안다.

요즈음 조국은 물론 미주에서까지 12.12군사 반란을 묘사한 ‘서울의 봄’이 화젯거리인 것을 보면서 군인들 세계의 적나라함을 짐작하게 되고 참군인과 정치군인의 극 대조를 보며 씁쓸함의 극치를 느낀다. 하지만 배신하며 부귀영달을 누린들 10년이 더 가겠느냐? 오욕은 천년만대까지 가 후손들이 얼굴을 못들 것이 자명한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무능하거나 악정을 펴는 최악의 권력자들, 마치 사형 집행장에서 보는 ‘망나니의 칼춤’ 추듯 남의 귀한 자식들을 애국이라는 기만으로 죽음터로 내보내는 것이 전쟁의 본질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 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면 절대, 절대 안 됨이다. 죽은 이들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할 정도로 살아남은 젊은이들의 PTSD(정신적, 육체적 상처 후 스트레스 증후군)로 인한 사례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거의 매일 접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가 조직들 중 필요불가결한 부서들이 있지만 군비경쟁 방지를 위한 각종 군축협상들이 있지만 실효화 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나 제일 중요한 건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악정을 펼 나쁜 위정자들을 가려내야 함이나 쉽지 않음을 안다. 우선적으론 국가를 지키기 위한 군대나 군인들은 국가 간 약정을 만들어 최소화해야 할 것이며 그 여유분을 오히려 국민 복지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들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전쟁 없이 이기는 전쟁이 최선의 방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래도 젊은이들보다 형편이 보다 나은 기성세대들이 주위에 이런 벼랑 끝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을 찾아내 구원의 손길을 내주도록 노력함이 우리 기성세대 모두의 염원이 되기를 바란다.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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