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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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또 다른 시작이다

2024-01-02 (화)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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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 깻잎과 삭힌 고추를 맛있게 먹는 남편에게 이게 다 텃밭 농사를 틈틈히 갈무리를 잘 한 내 덕이라며 잘난체를 한다. 또한 해가 바뀌기 전에는 대청소와 이불 빨래를 하고 옷장 정리를 하며 올해의 마무리를 한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나면 갈무리하여 마무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친 계획으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때로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작배기로 달려들어 해결하는 이중적인 할머니다.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 사람들과의 일들은 두고두고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다. 결자해지라하여 매듭을 묶은이가 그 매듭도 풀어야하는데 살다보면 풀지 못한 것도 있다. 그 중에 한 매듭은 몇 년만에 우연히 만나 결혼했다는 그 집 아들과 미국 며느리를 안아봐도 된다기에 꼭 끌어안으면서 눈물과 함께 말랑말랑하게 마무리가 됐다. 그동안 소중하고 기쁨이던 한국학교는 코로나로 황망하게 이별하면서, 아직도 내게는 섭섭하고 마음의 마무리가 안된 듯하여 애써 담담하게 지내고 있다.

지난 해를 돌아보며 마무리를 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또 다른 게획을 세워야한다는데, 할머니가 되니 이젠 해가 바뀌어도 그날이 그날이니,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도 안 아플수는 없고 큰 병없이 그냥저냥 아프면서, 내가 운전해서 이것 저것 배우고, 집안 살림 꾸리고, 아이들 가끔씩 보고, 정다운 얼굴들과 만나고, 여행가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남 미워하지말고, 누군가에게 미운털 되지 않으려면, 내가 별로인 이는 상대도 나를 별로 일테니 되도록 만남을 삼가하고, 좋다고 누군가에게 푹 빠져서 나중에 내게 그럴줄 몰랐다고 서운해 말고 그냥저냥 지내야겠다.


그러나 젊을때는 무모하더라도 많은 계획을 세우는게 좋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중에 몇 가지는 자신의 삶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나보니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게 있고 예나 지금이나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일주일에 책 한권 읽고, 한달에 한편 이상 글을 쓰고, 여행작가가 되어 내 칼럼을 책으로 만들고, 한국의 모든 박물관을 가보고, 바닷가와 깊은 산속에 있는 돌탑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부지런한 남편덕에 내 기준으론 부자가 되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미, 남미, 호주로 여행가서 그 나라 박물관과 시장을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높은 곳에 올라가 그 동네 구경하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꾸준히 할 계획이다.

호기심은 많지만 겁 많고 탈이 많아서, 나는 못 오를 나무인줄 알면서, 아직도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며 틈틈이 기회를 노린다. 음주가무에 소질이 없는데도 뾰족구두와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집시처럼 춤추려고 큰가슴 수술을 생각하며 스포츠 댄스랑 줌바 춤을 배우는데, 너무 못한다고 나만 따로 벽보고 하라기에 삐져서 못가고 오며 가며 눈 흘기며 다닌다. 요가는 무릎을 접는 기본자세를 못하고, 한번 누워 뒤집으려면 물방게처럼 뱅뱅 돌아가던 요가매트는 주방깔판이 되었다.

음정과 박자는 모르지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아직은 할 수 있는게 더 많아서 다행이라 여기며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본다.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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