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의 독도 영유권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오래된 갈등과 대결의 누적으로 도저히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던 한국 사회 진보 보수 양진영의 무중력 지대이자 보기 드문 협동(協同)의 공간이었다. 진보와 보수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지만 사사건건 논리나 희망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대화 공간은 물론 각각의 진영에서 자기 목소리만 드높이고 건전한 토론마저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위 두 가지 사안에서만큼은 어느 정도의 공감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공동체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인 국가 정체성과 밀접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가 정체성(國家正體性)은 국가의 존재이유이며 특별하게 가르치고 강조하지 않아도 구성원 각자의 체험적 인식 공간의 범주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채 2년도 되지 않아 이를 무망(無望) 하게 만들어 버렸다. 보수진영에서 마저도 ‘이게 뭐지?’ 어리둥절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시대의 이념(理念)이 경제(經濟)라는데 이의가 별로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꽃은 주식회사다. 그 주식을 사고파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2023년 말 한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1,424만 명으로 성인 기준 두 명 중 1명은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시가총액은 2,303조 원이다(한국거래소 2023.10.4) 그러나 세계시장에서의 규모는 아직도 1.4%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62.4%), 유럽(17.0%), 일본(6.1%), 심지어 사회주의 중국도 3.3%이다. 명목 GDP로 본 한국의 경제규모( 13위:2023)는 미국의 1/15, 일본의 1/2.5 정도인데 비해서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미국의 1/44, 일본의 1/4.3이다. 언뜻 보기에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한국 주식시장이 주가조작, 변칙회계 등이 지속적으로 난무해서 국내외의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다. 미국이라면 변칙회계나 주가조작법은 탈세와 함께 영구 추방 등 중범죄에 해당된다. 그만큼 자본주의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범죄인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 부인이 이 주가조작에 관여되어 있다는 것으로 취임 이전부터 시끄러웠지만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국가 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어서 국민의 70%가 수사에 찬성하고 있다(2023.12.11, 국민일보).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에 현직 대통령과 청와대는 물론 청와대 직원들 자택까지 수차례 압수수색을 했다. 그런 전력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된 사실들을 낱낱이 알고 있는 국민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아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국가 안보는 진보와 보수 이전에 국가 존재의 기틀이다. 그 제1수단은 군대다. 군대는 명령이 근간이다. 그 명령과 지휘계통에 이상이 생기는 순간 군과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기능이 마비되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다. 국군의 주력부대 중 하나인 해병대가 지난여름에 발생한 한 병사의 죽음에 대한 처리과정상의 혼란이 현역 군인의 병영을 넘어 그 부대를 사랑하는 예비역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칙과 명령대로 따랐던’ 수사단장을 항명수괴죄로 만들어 버린 가치전도(價値顚倒)에 대해서 군(軍)이라는 특수성의 영역을 벗어나 버린 사건으로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클레인으로도 막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대통령이 된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또 어떻게 하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명예나 지위도 바라지 않고 온 가족까지 희생시켜 가면서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군 홍범도 장군을 생뚱한 이유로 모욕하고 있는 현실을 역사와 국가의 정체성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지켜야 할 대통령과 그 정부에서 왜 이런 일을 만들고 있는지를 국민들은 역시 지켜보고 있다.
구태여 보수와 진보의 구분도 없는 사안들이다. 공정은 무너지고, 원칙도 없고, 자기 가족에게만 한없이 너그럽고, 검찰과 검사 이외에는 법앞에 불평등하고, 그들만의 자유로운 세상, 무슨 뇌물이든지 검사의 괴상한(?) 법률적 기준만 난무하는 검찰공화국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검찰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짚자면 지금의 한국에는 검찰도 아니고 단 세 사람밖에 없는 듯 보인다. 대통령 내외와 또 한 사람이 그들이다.
또한 대한민국에는 2천여 명의 검사만 있는 게 아니다. 3천여 명의 판사도 있고, 밤낮없이 나라를 지키는 50만 군대도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100만 원 이하 벌금을 못 내 교도소에서 노역형을 마친 건수는 1만 4034건으로 집계됐다(2023.12.26 서울신문). 잠재적 ‘한국판 장발장’은 그 수십 배가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민들이 어떻게 버티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걸 알 필요(?)조차도 없는 검사님들의 세상인 것이다.
세상은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 99.99%다. 세상 사람들을 온통 범법자들로만 바라보고 누구든지 비틀기만 하면 범죄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교만과 건방의 시계’는 머지않아 멈추게 될 것이다. 멈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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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