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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의 앵콜클래

2023-12-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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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의 책

책... 한자로 ‘冊’이라고 쓴다. 즉 대나무를 엮어 놓은 모습이다. 옛날에는 대나무 위에 글을 썼다고 한다. 얼마전 부터 대나무(신문)에 써 온 글들을 모으는(冊) 작업을 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글을 모은다기보다는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치 그동안에 써온 글들을 모아 ‘책 속의 책’을 만들고 있다고나할까. 한권의 책이 되기 위하여, 미흡한 글과 수작(秀作)이 따로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모양으로 글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한권의 책이 될만한 분량의 글을 정리하고 보니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듯 하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약점과 장점도 훤히 비쳐 보인다.

글쓰기와 수다는 다르다. 특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는 (신문에) 글을 쓰려고 하면 일단 스트레스부터 받는다. 더우기 글이 잘 안 풀릴때는 만땅으로 받는다. 보통, 사람들은 글쓰는 당사자가 꽤 자신감에 넘쳐 당당하게 글을 발표하나보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게중에는 글재주가 뛰어나 천편일률로 글 쓰기를 완성해 나가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글을 쓴다는 것은 큰 진통 끝에 얻어지게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골키퍼 있는 골대에 골을 넣는 것보다도, 때론 골프장의 작은 구멍에 버디샷을 성공시키는 것보다도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럴 때 과연 어떻게 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싶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글들을 쓰고 있는 것일까? 제목들도 잘 정하고 글 쓰기도 술술 잘 풀어나가는 것만 같다.

음악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던 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음악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선 음악 이야기가 글쓰기에 쉬웠기 때문이었다. 음악이라는 주제가 글쓰기에 편했다는 뜻이 아니라 음악은 그 자체에 소리가 들어있기 때문에 판단하는 기준(잣대)이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즉 글을 마친 뒤 글에서 음악이 들려오면 그 글은 좋은 글, 들려오지 않는다면 그 글은 빵점이다. 다른 문장력 따위는 부수품일 뿐이었다.


참 오랫동안 음악 이야기에 도전해 왔던 것 같다. 게중에는 글 속에서 음악이 들려 온 적도 있었고 음악은커녕 말도안되는 이야기로 점철된 글도 많았다. 아무튼 그동안의 글쓰기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간다. 자신만은 다를 줄 알았는데 얍삽한 포퓰리즘도 엿보인다. 진솔하고 강직하게 글을 써 왔다고 자부해왔는데 알고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저 요리조리 약점은 피하고 독자가 좋아할 면만 골라 써온 그런 가벼움(?)도 엿보인다. 물론 그러한 잔재주가 혹자에게는 글솜씨라고 부르게하는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보다 진솔하게 써왔다고 생각한 글들이 이러한 글재주라고 불리우는 비판의 잣대에서 결국은 버림받았다는 점이다. 같은 글, 똑같이 아픈 손가락들인데 무참히 잘려나가는 모습은 ‘한 권의 책’의 비정함을 엿보게한다. 좋은 글쟁이일 수록 이러한 냉혹함으로, 글의 생명력을 위하여 자신의 팔다리를 과감하게 잘라내는 자들일 것이다. 물론 나의 글들이 그러할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간 팔다리들이 무척 아프다.

사실 하나의 글이라고나할까, 칼럼이라고나할까 여러사람이 읽는 지면 위에 글을 발표하게 된 것은 그저 한가지 소박한 바람이 있었기때문이었다. 예전에 샘터라는 잡지의 일회용 작가들의 수필처럼 그렇게 솔직 담백하게 글을 써보자. 이러한 생각으로 꽤 오랫동안 지면 위에 낙서질을 해 왔던 것 같다. 아마츄어리즘에 매달려 글을 써왔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다보니 마치 자신이 프로가 된 듯 과유불급의 무모함도 느껴져 온다. 그러나 한 권의 책 속에 자신만의 좋은 점을 가득 펼쳤다고 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을 것이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 점이 어쩌면 가장 숨기고 싶어한 약점이요 가장 미약하다고 생각한 점이 어쩌면 가장 뛰어난 점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한권의 책이 마무리 되어간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좋은 책으로 남게 될지 혹은 몇몇사람, 혼자만의 책으로 남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바그너가 ‘파르지팔’이 완성된 뒤에 그랬던 것 처럼, 다른 사람의 박수보다는 오직 홀로, 스스로에 보내는, 그동안 이정훈의 음악칼럼과 여로를 함께했던 많은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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