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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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정의

2023-12-15 (금)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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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이 발전해온 원동력이 화를 적절한 때에 잘 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처참한 영국의 교도소를 보고 존 하워드가 분을 터트린 것이 영국의 교도소 개혁운동이 되었다.

노예들의 불행을 보고 윌리엄 개리슨이 “노예의 슬픈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을 그늘지게 한다”고 외치며 화를 폭발시킨 것이 노예해방운동이 되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말하면 등잔을 든 백의의 천사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고집불통이고 성미가 급한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환자들에 대한 잘못된 처리에 분개하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병원 개혁에 나섰다고 한다. 한국의 4.19도 정의 구현의 신념을 폭발시킨 민족적인 ‘화’였다.

정의는 그 깊이에 있어서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동등한 정의(Equitable Justice)’로서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사회정의이다. 둘째는 ‘분배되는 정의(Distributive Justice)’로서 복지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사회정의로 발전한다. 여기서 좀더 발전하면 ‘보상의 정의(Compensatory Justice)’로서 특별한 계층을 위하여 배려하는 사회 정의가 있다. 신체나 정신부자유자, 사회의 도움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는 시민에게 온 국민이 협조하여 특별한 배려를 하는 사회정의를 가리킨다.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사는 지도자들의 용기가 좌우했다”고 단언하고, “권력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탐하는 지도자들에 의하여 문명은 쇠퇴했다”고 말했다. 그런 뜻에서 정의로운 용기는 사회발전의 씨라고 말할 수 있다. 정의로운 친구를 한 명 갖는 것이 부자 친구 열 명을 갖는 것보다 낫다.

영의 ’Righteousness’ 와 ‘Justice’는 구별된다. 전자는 엄격하고 정확한 의무를 요구하는 정의, 후자는 복지와 관용을 내포하는 정의이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의는 전자에 속하고 바리새인의 의는 후자에 속한다.

세계 제2차 대전 중 많은 저항운동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연합군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저항운동은 유명한 DRM(Dutch Resistance Movement)였다.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신학자 헨리 크레이머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의 교인들이 은밀히 목사관에 모였다.

“목사님, 이런 때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크레이머 목사는 조용히 말했다. “정의로운 주님이시니 당연히 화를 내셨겠지요.”

“그럼, 우리도 화를 내야할 것이 아닙니까?” 이날 목사관에서 유럽 최강의 저항운동 DRM이 조직되었다.

정의 구현에 필요한 것이 용기이다. 4.19 혁명을 대표하는 사진이 탱크 앞에 혼자 우뚝 서있는 한 여대생의 모습이었다. “탱크로 나를 밀어보려면 그렇게 해보시오.”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것 같은 어린 대학생의 당당한 모습이었다.

용기가 빠진 지식은 위선의 도구가 된다. 사랑도 진리도 용기가 없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토인비는 이런 상황을 문명 쇠퇴의 징조라고 했다. 용기가 없으면 문명도 쇠퇴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집트, 로마, 그리스 등 어느 문명이나 그것이 쇠퇴한 원인은 국민과 지도자의 비겁함에 있었다. 용기는 솔직함이며 정직함이다.

신에게 정직한 것을 신앙이라고 말하고, 사람에게 정직한 것을 용기라고 말한다. 수단과 방편으로서의 용기가 아니라 진심(眞)과 성의(誠)를 추구하는 것이 참용기이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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