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수많은 미국인들은 ‘고독감의 위기’에 빠졌다. 격리와 재택생활이 갈수록 길어지면서 외로움과 고립감 같은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렇듯 우울해 지기 쉬운 시기에 가끔 걸려오는 안부전화들은 자신이 세상과 여전히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했다.
특히 평소 접촉이 뜸했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반가움은 두 배가 된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은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연말 할러데이 시즌에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우울을 동시에 느낀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데 자신만 그렇지 못한 것 같은 소외감이 엄습한다. 여기에 더해 할러데이 시즌 인사치레를 하고 선물을 해야 할 사람들은 적지 않은데 이를 감당할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사실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이런 현실적 처지는 우울한 감정을 한층 더 자극한다.
연말만 되면 엄습하는 이런 ‘할러데이 블루스’를 떨쳐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연결감’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법이라고 심리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바로 옆에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도 홀로 있다는 고립감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먼저 연락해 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랜 만에 안부전화를 하거나 텍스트를 보낼 수도 있고 간단한 인사와 감사의 뜻을 카드에 담아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른바 ‘라이킹 갭’(liking gap)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는 생각에 스스로 민망해 한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호감을 주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럼에도 ‘라이킹 갭’ 때문에 아주 친한 관계가 아닐 경우에는 연락을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은 확인시켜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피츠버그 대학 캇츠 비즈니스 스쿨 연구팀의 연구이다. 이들은 지인들에게 보내는 간단한 안부를 묻는 전화나 텍스팅 혹은 이메일링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측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13가지의 실험을 실시했다.
5,900명 이상이 참여한 이 실험들의 결론은 명료했다. 안부 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보낸 사람들의 예상치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특히 평소 연락을 자주하지 않던 ‘약한 관계’(weak tie)의 수신인일수록 그런 긍정적 감정의 폭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를 한 후 남가주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던 한 한인은 지난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전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더니 의외로 반갑게들 맞아줘 기분이 좋았다며 “먼저 전화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연구팀을 이끈 페기 리우 박사는 “아주 간단한 연락조차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왜 지인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야 하는지를 연구결과는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다른 연구에서도 긍정적인 사회적 연결은 삶의 목적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즐거움과 설렘을 안겨주지만 우울을 안겨주기도 하는 할러데이 시즌에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나 자신도 위로 받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바로 이 같은 ‘아주 작은 연결의 순간들’이 안겨주는 기쁨을 자주 맛보는 것이 아닐까? 당장 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일별해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의 번호를 눌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