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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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인생은 같다

2023-12-12 (화) 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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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다. 같이 가도록 참아가며 서로 맞춘다. 시작과 끝이 같도록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아가는 부부는 있을 수 없는 소설이나 영화 속 얘기다.
못 맞추면 따로 산다. 대부분 속도 끓이고 살면서 나이를 먹으면 돌이켜 보고 참 잘 견디었고 자신의 과거를 본다.

지나온 세월에 누구를 탓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잘 한 일은 ‘참는 것'이었다. 서로 안 맞는데 맞출 수 있는 것은 기계 톱니바퀴와 인간의 의지 두 가지다. 개중에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맞추어 그렇게 보이는 거다.
속 썩이다가 먼저 간 영감 생각하며 보고 싶다고 하고, 먼저 간 아내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주신 인간의 진정어린 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 꼴 을 못 보겠다, 하면서 헤어져서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예쁜 뭉게구름 없이 여기저기 보이는 뿔뿔이 흩어진 떠돌이 구름이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이라면 참고 견디며 한 생을 만들어 보는 게 진생이다.


부부가 살다가 하나가 아프면 남은 하나도 따라서 인생이 망가진다. 그래도 그것을 견디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덕목이며 맛이다. 간장이나 묵은 된장의 맛을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묵은 된장, 잘 익은 김치의 맛으로 살다가 과거를 회상할 때 씁쓸하든 환하든 미소라도 지으며 스스로에게 감사하며 가야 한다.
무엇이 좋은 건가. 어찌해야 옳은가. 너의 인생도 있지만 내 인생은 더 소중한데. 그걸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게 늙은 부부의 삶이다.

94세이신 나의 장인어른이 계신다. 내 몸은 건강한데 같이 살아온 아내가 힘들다. 뒷바라지 하느라 내 인생은 같이 묻혀 간다.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고 남은 내 인생 아깝다고 살아가는 사람도 허다하다.

살만큼 사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늘도 친구한테서 받은 좋은 글 속에는 100살이 넘어서도 활동하는 즐거운 인생살이가 올라오는데 그 분은 움직임이 힘들고 정신없는 아내를 데리고 운동하러 다니신다. 여행 못 다닌 지 수십 년이다.혼자서 골프도 칠 수 있는, 건강하고 체력도 대단하시다. 지하실에 탁구장 만들어 공 건네주며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고, TV를 보며 발 마사지 할 수 있도록 그 앞에 지압 깔대 보조기를 설치하셨다. 평생 안하던 밥도 지어서 병든 아내를 정성으로 보살피며 살아가신다.
젊어서도 아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셨지만 이웃을 위해서는 볼티모어봉사센터에서 일도 하며 사시던 분인데….

나이를 먹으며 잊혀져가는 사람 모습이지만, 죽으면 사라질 우리 삶이지만 그 분은 여전히 아내에게 헌신을 하신다. 기억하고 본받고 살아야 한다. 인간의 도리를 몸으로 실천하고 계신다.

사위 나이 70이 넘어서 같이 늙어 가지만, 내 삶은 어떻게 변할지. 본 받을 건 많은데 본 보일 건 하나도 없다.
한치 앞을 알 수 없지만 좋은 분 삶을 옆에서 보다보면 나 또한 좋게 변하는 어떤 삶이 나올 런지….

<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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