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에 서있다.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를 드렸는데 마지막 달에 마음이 두근거리며 초조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의 성적표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를 다시 가다듬으며 정리를 해보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개인이나 가정도 성적표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나라의 성적표를 언제나 점검하며 가혹하리만큼 냉정해야 한다. 특히 이번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전의 결과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것밖에 되지 않은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면서 숫자를 배울 때 셈본이란 책이 있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그리고 구구단이다.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셈이 안 되어 한 국가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까지 들떠 공중을 헤매고 다녔으니 참 폼이 없어졌다. 더욱이 당일에 노인인 한덕수 총리가 허리를 구부리고 전광판을 보는 모습이 동정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패배한 결과에 대한 사과의 말, 더 나아가 대통령의 책임의식의 발언이 국민의 마음을 더욱더 무겁게 했다. 이렇게까지 셈을 못했단 말인가? 초등학교만 잘 마쳤어도 셈이 그냥 나오는데 말이다. 요사이는 계산기가 있어 오류가 나올 수가 없다. 하기야 그때 한국정부에 전산망이 고장 났다고 했던가!
특히 외교에 있어 셈법은 더욱더 냉정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점수는 몇 점인가? 166국에 29점이니 평균을 보면 5.7%이다. 한국의 위상이 이 정도이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이나 일본도 우리를 밀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프랑스는 일찍이 사우디를 밀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마지막 판에 프랑스를 갔는지, 우리의 무지를 드러냈고 외교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의 성적표를 연말에 받아들었다. 내년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해야 한다.
참으로 우리는 외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옛 왕정 때 세자책봉을 받으러 대표가 갈 때나 사절이 올 때 이미 사신은 헤아리기 어려운 선물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않은지 헤아려 보아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국빈초청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위정자들을 보곤 하는데 이는 착각이다. 절대로 자국이 손해를 보고 그런 대접을 할 리가 없다. 그것이 외교다. 우리말에 등치고 간 뽑아간다고 했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한국과 북한의 군사력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우리가 위다. 그런데 왜 북한에 끌려 다니고 또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가? 우리는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한미군사협정이면 충분하다. 괜히 긁어 상처만 크게 한 꼴이 되었다.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우리가 능히 이기는 길을 찾으면 된다. 우리는 이미 이겨놓았다. 이제는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며 외교의 지평을 키워가자. 내년부터는 성적표가 향상되는 모습을 보자. 선진국다운 외교를 하자는 것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가 한 해를 마무리 할 때 제대로 셈을 하고 일기장을 덮자. 얼마 남지 않은 금년의 성적표를 보고 다시 보고 미진한 것이 있으면 바로 세우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우고 내년의 성적표는 후회함이 없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의 셈이 정확해야 한다. 다시는 부끄럼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서로에게 격려와 힘이 되어주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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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