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칼럼] 바이든에 등 돌리는 아랍계 유권자들

2023-12-04 (월) 샤디 하미드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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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가자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아랍과 무슬림계 미국인들은 외교정책과는 무관한 이유로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화적, 사회적 이슈에 민주당이 왼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문제였다. 특히 성소수자(LGBTQ+)의 권익을 옹호하는 민주당 행정부의 교육정책이 이들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렸다. 이제 이 같은 논란은 더 큰 이슈 앞에서 잠잠해졌다.

살벌한 살육전의 와중에 문화 전쟁은 사치다. 추수감사절 연휴동안, 필자가 친지 및 가족들과 저녁 식탁에서 나눈 대화는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을 수용한 바이든 행정부 성토로 모아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네 명의 아랍계 미국인 동료들은 “2020년 대선에서는 바이든을 찍었지만 2024년에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이들 네 명의 던질 수 있는 표는 단지 네 표에 불과하다. 그러나 “투표를 하느냐 마느냐”는 대화는 아랍계 유권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아랍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지난 10월에 실시한 서베이에 따르면 2024년 선거에서 바이든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전체의 17%로 지난 4월의 35%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참고로 2020년의 수치는 59%였다. 민간 여론조사업체인 조그비 스태티지스가 아랍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시작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공화당 지지자로 밝힌 응답자(32%)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한 응답자(20%)보다 많았다. 또한 여론조사에 참여한 아랍계 미국인의 67%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대한 바이든의 대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필자가 X(전 트위터)에 올린 추수감사절 대화는 700만 뷰를 기록했고, 수백 명의 진보주의자와 트럼프 반대자들이 바이든 행정부를 성토하는 분노에 찬 댓글을 올렸다. 물론 이 중에는 “바이든도 문제지만 트럼프는 아예 우리를 추방하려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랍계 유권자들에게 “바이든의 정책이 못마땅하더라도 꾹 참고 그에게 투표하라”는 조언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표를 바이든의 몫으로 당연시해선 안 된다. 아랍계의 표심을 잡으려면 그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반 트럼프 정서가 민주당 후보에 대한 실망을 완전히 가려주진 않는다.

투표는 지극해 개인적인 행위다. 팔레스타인 문제만 터지면 아랍계 미국인은 맹목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사사로이 행동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기표소에 들어간 유권자가 냉철한 비용-편익 분석에 바탕해 투표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건 일반적 투표 행태를 모른다는 반증이다. 정치학자인 크리스토퍼 아첸과 래리 바텔은 “유권자의 판단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들이 속한 집단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애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모든 정치는 정체성 정치다(identity politics).

모든 유권자는 설사 대다수의 이슈에 견해를 같이 하는 후보라 해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개인적인 기준선을 갖고 있다. 이 선을 넘은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유권자 개인의 양심에 위배되는 행위다. 예를 들어 바이든이 어느 날 갑자기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면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 그에게 표를 줄 수 없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통념을 거부하는 필자는 주변의 아랍계 미국인들에게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팔레스타인들에게 동정적”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가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건 우리가 느끼는 혐오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죽은 팔레스타인이 정말 죽었느냐”는 바이든의 황당한 질문을 거론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측이 사망자 수를 제대로 밝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전쟁을 치르는데 따른 대가”라고 말했다.

생전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박탈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죽어서도 품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건 허튼 말장난이 아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팔레스타인인을 완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활동했던 바넷 루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존중은 가끔 자기 이익에 우선한다. 1만 5,000명의 동료 아랍인들을 학살한 무장세력(이스라엘)을 옹호하고, 자금을 지원한 바이든에게 투표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대통령 선거일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 유권자들이 자신이 결정한 원칙에 따라 양당 후보들 중 누구에게도 투표하지 않는다. 그게 민주주의다.

2024 선거가 접전 양상을 보인다면 아랍과 무슬림 표는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학자인 요제프 초우하우드의 계산에 따르면 미시간의 중동과 무슬림 유권자들 가운데 10%가 투표를 포기할 때마다 바이든은 1만 1,000표를 잃게 된다. 아랍과 무슬림 유권자들의 집단적 투표 불참은 다른 소수계 유권자들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젊은 소수계 유권자의 70%가 바이든의 이스라엘-가자 전쟁 대응에 불만을 드러낸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전쟁의 낙진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사고가 미국인들의 생활 속 깊숙이 번져갈 것인지 여부가 앞으로 몇 개월간 소수계 유권자들의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이다. 최근 버몬트에서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세 명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고, 당국은 이를 인종혐오 범죄로 규정했다.

바이든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아랍계 미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만연한 차별과 개인적 안전에 우려를 표시한다. 그나마 민주당에게 다행스러운 일은 선거가 오늘 당장 치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기억 또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샤디 하미드는 워싱턴포스트의 논설위원이며 칼럼니스트로서 문화, 종교, 외교에 관해 글을 쓴다. 풀러 신학교의 이슬람학 연구교수이기도 하며,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프로스펙트 매거진에 의해 세계 50대 사상가의 한사람으로 선정된 바 있다.

<샤디 하미드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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