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마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아무래도 장례식 참석을 자주 하게 되는데 식장에 들어설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입장료 징수하듯 식장 입구에서 조의금 받는 모습입니다. 아마 한국인의 장례식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온 관행이니까, 남들도 다 그러니까 라며 별 생각없이 당연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어렸던 시절만 해도 시골 모심기나 장례식 같은 집안 대사 때면 마을 모든 이웃이 달려들어 함께 했던 걸 기억합니다. 생활이 어려웠던 때라 소위 ‘품앗이’라 하여 온 마을이 힘을 모아 돌아가면서 함께 돕는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지금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도 경제적 부담을 분담해주려는 관행이 그대로 이어져오는 것 같은데 생활 형편과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 이 시대에는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저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을 꼭 없애자는 것이 아니요, 그 아름다운 관행을 미국인들이 하는 식으로 우리도 바꾸어보자는 것입니다. 일간신문에 나는 미국인 부고 난을 보면 99% 거의 전부가 ‘화환이나 조의금은 사양합니다. 대신 뜻이 있으신 분은 xxx에 기부하십시오’(In lieu of flowers…)하며 본인이나 가족이 원하는 학교, 병원, 자선기관, 선교단체 등의 이름을 알립니다. 많은 미국인들이나 특히 유대인들은 심지어는 전 재산까지도 그렇게 기부하기에 그들의 단체들은 점점 번창하는데 우리 한인은 그것이 취약한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미국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생활하는 것을 독립심 없는 무능력의 수치로 생각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시하고 자녀들도 그걸 기대하기에 결과적으로는 형제간 분쟁의 소지가 되는 경우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는 실정입니다. 심지어는 부모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을 놓고 형제간 분쟁이 있기도 하고, 결혼 축의금도 낸 사람들이 부모의 얼굴보고 낸 것이니 부모의 것이다, 결혼 당사자 것이다, 하며 부모 자식간 문제가 생기는 추태도 봅니다. 그것을 잘 아시는 제 어머니는 98세로 돌아가시기 전 장례비 남거든 한 푼도 남기지 말고 전액 선교에 보내라는 유언을 남기셨고 그렇게 시행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변할 때가 되었다는 건의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즉 부조금 관행은 그대로 유지한다 하더라도 개인이 받는 대신 필요한 기관을 지정하여 가신 분의 이름으로 기부하도록 하는 아름다운 관행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한 예로 지역마다 한인들의 구심점이 되고 후세에 한국의 얼을 이어가도록 중심 역할을 할 한인회관 같은 것 설립하여 동판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기는 것입니다.
1992년 ‘4.29 폭동’ 당시에도 저는 같은 제안을 했는데 30여년이 지난 지금, 또 같은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한인들의 가게가 불타고 파괴되는 등 큰 피해가 있어 한국 정부를 비롯하여 국내외로부터 많은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총액이 수천만 불로 기억되는 거금이었지만 수천 명의 피해자에게 쪼개니 받는 개인들에게는 푼돈이어서 큰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들의 입장은 푼돈이라도 아쉬운 어려운 형편이지만 멀리 보는 유대인들 식으로 개인들에게 분배하는 대신 기념관 같은 것을 지어 운영하면서 훗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피해자 자녀들의 장학금 같은 것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 말도 많고 의견들이 맞지 않아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한인의 구심점이 될 큰 건물 생겼을 거고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혜택을 받고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한인회관 건물까지는 너무 거창하고 자선단체 만들거나 선정하여 그런 성금 납부처로 지정하는 등 발전된 고국의 위상에 걸맞은 문화민족다운 성숙된 모습으로 변모하기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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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은퇴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