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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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국가 동맹

2023-11-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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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Axis of Evil)’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2002년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W. 부시가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테러를 지원하는 체제, 이란, 이라크, 북한을 가리켜 쓴 용어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구소련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는 호칭과 제2차 세계 대전의 ‘추축국(the Axis)’을 합친 조어로 추축국만큼이나 사악하다는 점을 표현함과 동시에 장기적인 준전시 태세에 맞먹는 위협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 용어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내셔널 리뷰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4개 불량국가가 미국 주도 세계질서를 뒤엎으려 들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새로운 악의 축’이 노골화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악의 축’은 네 나라가 동맹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악의 쿼드’, 혹은 ‘폭정체제의 축’으로도 불린다.

이 위험한 동맹에 또 다른 별명이 붙었다. ‘실패국가들(Failed States)의 세계동맹’이란 지칭이 그것이다.

아이티,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국가들의 경우와 달리 북한이나 러시아는 국내적으로 국민들을 잘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실패국가로 분류하고 있을까.

북한이나, 러시아 그 사회들은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가 바닥난 사회다. 그런데다가 정부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인간으로서 삶의 기본적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유럽정책센터(CEPA)는 설명하고 있다.

한 국가의 발전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HDI)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해마다 발표하는 HDI는 한 국가의 경제적 발전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 평균 수명, 기본 건강 수준 등을 종합해 국가의 인간 개발 상황을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되고 있다.

2022년 현재 HDI가 가장 높은 나라들은 스위스, 노르웨이 등 이른바 선진국들이고 한국은 일본과 함께 19위로 랭크돼 있다.

반면 새로운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는 52위, 이란은 76위, 중국은 79위로 각각 랭크돼 있다. 북한은 통계 부재로 이 조사에 아예 등록조차 돼 있지 않고 여전히 들려오느니 식량부족에, 아사(餓死)상황이다.


HDI와 아울러 한 나라의 발전도를 측정하는 또 다른 주요 척도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청렴도 인식에 관한 순위를 가리키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다.

CPI는 덴마크가 90점으로 1위, 핀란드·뉴질랜드가 87점으로 공동 2위, 노르웨이가 84점 4위, 싱가포르·스웨덴이 83점으로 공동 5위를 차지하는 등 역시 선진산업국들이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31위)

반면 북한은 171위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고, 이란은 147위, 러시아는 137위, 중국은 65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인간개발지수와 부패인식지수, 둘 다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한 마디로 국민생활은 바닥을 헤매는 가운데 불신만 팽배한 실패 국가라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 ‘새로운 악의 축’을 돕는 나라들 역시 하나 같이 인간개발지수가 바닥권인 나라들- 말리(186위), 시리아(150위), 캄보디아(146위), 라오스(140위), 베네수엘라(120위) 등-이란 점이다.

이 실패국가들의 동맹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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