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포크 송의 전설 - 둘 다섯- 인터뷰 (1)
지난 9월 17일 헤이워드 사봇 칼리지 퍼포밍 아트 컴플렉스에서 한국일보가 주관하고 코리아나 플라자 초청으로 이루어진 포크 듀엣 ‘들 다섯’의 공연이 이루어 졌다. 공연은 일요일 오후 3시로 잡혔다. 이 시간대는 많은 관객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미국에 거주하는 대개의 한국인들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이 제일 우선 순위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를 마치고 이 시간대에 맞춰 오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충만하지만 시간 때가 맞지 않아 포기한 사람이 많을 걸로 예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어느정도 성황리에 공연이 이루어 졌다고 본다.
한국일보 사업부 국장 이민규 사회로 예정보다 30 분 늦게 시작한 공연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모두가 70년대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오프닝 곡이 끝나고 그들의 왕년의 힛트 송 ‘밤배’, ‘긴 머리 소녀’, ‘눈이 큰 아이’ 등이 잇따라 진행되자 어느덧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둘 다섯’ 이 부른 멜로디에 취해 시간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들은 꿈과 낭만이 가득했던 과거 속으로 안내했기 때문에 모두들 흐뭇한 표정을 띄우고 자신들만이 간직했던 그 때의 좋았던 순간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공연은 성황리에 끝나고 팬들과도 포토 타임 시간도 내주는 팬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민규 국장의 주선으로 ‘둘 다섯’ 의 멤버 ‘이두진’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 그룹 명이 둘 다섯이라 특이한 이름인데 어떻게 정했는지?
▶많은 팬들이 그룹 이름에 대해 궁금해해 이번 기회에 밝히고자 한다. 깊은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고 단지 오리지널 멤버의 각자 성을 따라 정했다. 이두진에서 둘, 오세복에서 다섯을 따서 그렇게 그룹 명이 탄생했다. 상당히 생소한 이름이었고 당시의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해보면 잘 정한걸로 생각된다 .이 그룹 명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고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 이유는 첫째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두번째는 신선한 점이다.
- 가요계에 들어선 동기는 ?
▶1973 년 한양대학교 축제에서 처음 데뷔했고 그 후 수표동에있는 카페 ‘태평양’에서 활동했는데 그 당시 그 카페에는 서수남과 조용필 등과 함께 무대에 섰다. 조용필은 그 때 솔로 가수가 아니고 보컬 그룹 ‘빛과 그림자’의 리더 보컬을 담당하고 있었다.
- 그 당시 음반을 내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최고의 메이커인 지구 레코드회사에서 처음 출발한 계기는?
▶그렇다 지구 레코드 회사는 한국의 최고의 음반회사이다. 그때에 지구 레코드회사에 소속된 가수들은 ‘남진’, ‘이미자’, ‘문주란’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톱 스타들이 즐비했다.그 당시 트로트 음악이 급속도로 침체되고 음악 애호가들은 번안 가요나 통기타 가수들의 음악을 선호 하기 시작 할 무렵 이었다. 주변에 아는 지인의 소개로 임정수 사장을 만나고 그의 특별 배려로 1975년과 1976년 LP 전집을 발표할 수 있어 큰 행운을 누렸다. 1집에는 ‘일기’, ‘긴 머리 소녀 ‘, ‘밤배’, ‘먼훗날’, ‘밤의 연가’ 등이 있었으며 2집에는 ‘얼룩 고무신 ‘, ‘순간들’, ‘눈이 큰 아이’ 등이 실렸다.
- 데뷔 당시 국내에는 어떤 그룹들이 있었는가 ?
▶수 많은 그룹들이 있었지만 지금 가장 두드러지게 떠오른 팀은 ‘편지’를 발표하여 인기를 얻고있던 ‘어니언스’ 와 그룹 ‘4월과 5월’ 에서 활동하던 김정호가 생각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