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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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마트에 가면 코리아타운이 보인다

2023-10-31 (화)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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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하는 일은 ‘코리아타운’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리고 기록한 자료들로 디지털 아카이브인 ‘코리아타운 위키백과사전’을 만든다.

2021년에는 뉴욕의 플러싱과 맨해튼의 코리아타운을 기록했다. 그리고 롱아일랜드에 오이스터 베이에 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가모어 저택과 관련된 이승만과 윤병구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1905년 8월5일 이승만과 윤병구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난 이야기는 일제의 야욕을 눈치 챈 미주 한인들의 한국 독립운동의 시작으로 기록될 수 있다.

2022년에는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커네티컷주의 하트포드와 뉴헤이븐, 뉴저지주의 포트리와 팰리세이드 팍 그리고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 등지의 코리아타운들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매사추세츠주에서 최초의 한인 유학생 생활을 한 유길준과 필라델피아에서 최초의 한인 의사이며 독립운동을 한 서재필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했다. 또 뉴멕시코주 한인회(회장 윤태자)의 초청으로 앨버커키의 코리아타운도 기록했다.


2023년에는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워싱턴 D.C.근교와 버지니아주 그리고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등지의 코리아타운들을 직접 현지답사하고 현재 그 디지털 아카이브를 제작하고 있다. 메릴랜드대학에서 한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대학을 졸업한 변수의 이야기도 기록하는 중이다.

각 지역을 현지답사 하면서 놀란 것은 각 지역 한인사회의 성장과 코리아타운들의 규모다. 특히 말로만 듣고 언론 보도를 통해서 보았던 애틀랜타 코리아타운의 발전은 괄목할 만했다. 그리고 각 지역 코리아타운을 방문할 때마다 코리아타운의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하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봤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코리아타운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한인 식당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한다. 그 당시 한인 식당들은 코리아타운의 상징 같았다. 한인 식당들이 있는 곳에는 한인들이 집중 거주하고 있었으며 한인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로 한인들이 고객이었던 한인 식당들이 교외지역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 코리아타운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한인 교회들이 분포된 모습에서 코리아타운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한인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부터 문화생활 및 2세들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한인 교회는 한인들의 생활의 중심지였다. 한인 교회들이 곳곳에 생기는 것을 보면 코리아타운의 울타리가 점점 확장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한인 식품점들이 코리아타운의 성장과 발전상을 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여겨지고 있다. 한인 식당들은 K-푸드 한류의 열기에 힘입어 이제 한인들이 별로 없는 곳에도 개업하고 있고, 또 한인 교회들도 여전히 한인들의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 성격상 그렇게 코리아타운을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는다.

반면 한인 식품점들은 코리아타운의 지역적 범위를 알려주고, 코리아타운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나아가 한인 식품점들은 새로운 코리아타운 형성의 첨병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한인들이 모여있는 코리아타운 중심지에 한인 식품점들이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한인 식품점이 생기면 한인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고 새로운 코리아타운을 형성한다. 대형화된 한인 식품점들은 이제 한인들만의 식품점이 아니라 주류사회나 타민족들도 즐겨 찾는 그 지역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한인 식품점은 코리아타운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한인 식품점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하나로 H-마트가 있다. 1982년에 뉴욕에서 ‘한아름’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H-mart는 미국 대도시 곳곳의 코리아타운에 자리잡고 있고 또 새로운 코리아타운을 만들어가고 있다. H-Mart에 가면 코리아타운이 보인다.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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