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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도널드 목 조르는 밧줄과 공화당의 침몰

2023-10-2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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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 사법 제도 차이점 중 가장 큰 것의 하나는 ‘재판전 협의’(plea bargaining)일 것이다. 미국은 검사에게 피고인과 협의를 통해 기소 내용과 형량을 가감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주고 있다.

이 제도가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조직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범죄 방지법’(RICO)과 관련해서다. 이 법은 원래 범죄 조직의 말단이 보스를 위해 침묵하는 바람에 조직 소탕이 어려워 생긴 것이다. 이 때 조직원들을 설득해 가벼운 형량을 때리는 조건으로 보스에 불리한 증언을 하게 할 수 있다면 검찰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2020년 조지아 대선 결과를 조작하려 해 RICO 혐의로 기소된 루저 도널드와 17명의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인 스캇 홀이 지난 9월 재판전 협의로 감옥을 피하는 대신 루저 도널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 주 루저 도널드의 측인 케네스 치즈브로와 시드니 파월 역시 징역형을 면제받는 조건으로 이실직고하기로 합의했다. 보석금업자인 홀은 조지아 커피 카운티 선거 사무소 선거 자료와 검표기를 불법 접촉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지난 번 합의로 검찰이 5년간의 집행 유예를 구형하는 것으로 재판을 끝내게 됐다.


홀이 잔챙이라면 이번에 검찰과 합의한 치즈브로와 파월은 조지아 선거 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파월은 백악관에서 열린 대선 관련 회의에 참석했으며 루저 도널드는 그를 한 때 선거 조작 수사 특별 검사로 임명하는 것까지 고려한 바 있다. 그러나 그 후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이유로 도미니언 등 검표기 제작회사로부터 13억 달러 규모의 손해 배상 소송을 당했고 2020년 대선에 베네수엘라와 쿠바 등 공산당 자금이 들어왔다는 등 루저 도널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음모론을 펼치자 도널드와의 사이도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파월은 6개의 경범죄 혐의를 인정하고 조지아 유권자들에게 사과문을 쓰는 것으로 징역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관계자들은 이번 파월의 합의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그녀가 원래 철저한 루저 도널드 신봉자였는데다 조지아 대선 조작 사건에 깊숙히 개입한 인물의 하나로 불리한 증언이 쏟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검찰과 합의한 케네스 치즈브로도 2020년 대선 부정 선거 주장의 주요 인물의 하나다. 2020년 크리스마스 무렵 루저 도널드의 대선 패배가 확정적이었는 데도 그는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소송 제기를 외치며 승소 가능성은 “1%”밖에 안 되지만 근거없는 부정 선거 주장이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그가 지난 주 조지아에서 한 개의 허위 서류 제출 중죄 혐의에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기소된 루저 도널드 재판에 검찰과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이번에 그가 인정한 혐의는 루저 도널드도 같이 걸려 있기 때문에 루저 도널드 유죄 평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또 조지아 가짜 선거인 명부 작성 음모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홀에 이어 파월과 치즈브로가 검찰과 합의함에 따라 나머지 피고인들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죄수의 딜레마’란 모든 공범 혐의자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면 모두 무죄가 되지만 그중 하나만 유죄를 인정하면 인정한 사람만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머지는 중형에 처해지게 된다. 누가 먼저 불 지 모르기 때문에 너도 나도 유죄를 인정하고 결국 모두 감옥에 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려 홍수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지아 검찰이 루저 도널드의 목을 조이고 있는 사이 워싱턴에서는 도널드가 밀던 짐 조던이 연방 하원 의장직 도전을 포기했다. 세번 표결에서 모두 진데다 표차가 20, 22, 25 등 점점 벌어지자 더 이상 해봐야 희망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루저 도널드의 공화당 장악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이다.

공화당은 지난 번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도 내분으로 하원 의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임 의장인 케빈 맥카시는 올 초 15번 투표 끝에 겨우 의장이 됐지만 이 달 초 8명의 반란표 때문에 미 역사상 세번째로 짧은 임기를 마치고 쫓겨났다. 그 후 스티브 스칼리스가 나왔지만 유효표를 얻지 못해 물러나고 이번에 조던까지 실패하면서 언제 누가 될 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래저래 공화당은 집권당으로 자격이 없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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