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으로 20년 이상 일하면서 안건에 대한 표결에 수없이 많이 참여했다. 안건에 따라 교육위원들 사이에 찬성과 반대 그리고 기권으로 표가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것이야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가끔 흥미 있는 광경을 보기도 한다. 특정 사안에 자리를 슬그머니 떠나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위원들이 있는 경우이다. 회의장 뒤편에 커튼이 드리워있고 위원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곳으로 들어가 화면을 통해 회의 광경을 모니터하다 표결이 다 끝난 후에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표결에 불참할 경우 회의 자체 불참이 아닌 표결된 특정한 안건에 대해 기권을 한 것으로 기록된다. 사실 기권도 찬성이나 반대처럼 하나의 의사 표시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위원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기권이 아니라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은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민감한 안건일 경우에 이런 모습을 좀 더 볼 수 있다.
의결조직에 따라 사용하는 표결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 경험에선 선출직 공직자들로 구성된 의사결정 조직이 무기명 투표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 주민들의 투표로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투명성’ 만큼 중요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선출직 공직자들의 현안에 대한 공식 입장은 표결 내용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주민들은 자신이 선출한 공직자가 어떤 사안에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살펴보고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렇기에 그런 표결에 무기명 투표란 생각할 수 없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들이 참여하는 표결에도 당연히 무기명 투표가 있을 수 없다. 교육감 선임처럼 민감한 인사문제조차도 표결은 당연히 공개된 자리에서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투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그것이야 말로 건강한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모습일 것이다.
물론 인사문제나 학생들의 징계 등의 사안에 대한 논의는 비공개회의에서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는 투명하게 표결이 이루어진다. 학생 징계의 경우에는 연방법에 따라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당 학생에게는 자신의 징계안이 표결에 부쳐진다는 것을 미리 통지한다. 그래서 해당 학생은 어느 교육위원이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투명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투명성에 익숙한 나에게는 한국의 국회에서 인사안에 대한 표결이 무기명 투표로 행해지는 것이 매우 어색하다. 과거에 대통령 탄핵 표결에서도 그랬고, 얼마전 다루어진 야당 대표 국회의원 체포 동의안이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이 모두 무기명으로 이루어졌다.
혹자는 무기명 투표에 순기능도 있다고 한다. 그래야 솔직하게 투표할 수 있고 그런 솔직함을 바탕으로 긍정적 결과를 창출해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출직 공직자가 투명하게 소신을 밝힐 수 없다면 나로서는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소명을 다 했다고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오히려 민감하고 어려운 사안일수록 더욱 투명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라고 유권자들이 선출해준 것이 아닐까.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색출해내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민망한 고국 소식에 표결의 완전한 투명성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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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