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적막을 깨고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어 알람을 끄고 양 옆에 누운 아이들의 동태를 살핀다. 다행히 알람 소리엔 깨지 않았다. 살금살금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조심스레 방문을 연다. 방문 여는 소리를 큰 아이가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를 불러 세운다. 엄마. 응, 엄마 어디 안 가. 큰 애 소리에 작은 애도 깨서 난리다. 아 망했다. 다시 둘 사이에 누워 두 아이를 토닥토닥 두들기며 재워본다. 오분 정도 지났을까 쌔근쌔근 숨소리만 방 안 가득 차오른다. 나는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방문을 나선다. 다른 방에서 자는 남편을 살짝 깨워 애들 옆에 가 자라고 부탁한다.
시간이 늦어 부랴부랴 세수만 하고 어젯밤 준비해 둔 옷으로 후딱 갈아입고 차에 오른다. 오늘은 교회 새벽 예배 밥 당번인 날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거리를 나서며 새벽 공기를 한껏 들여 마셔본다.
교회에 도착하니 벌써 다른 공동체원들이 일찍이 나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느라 바쁘다. 오늘의 메뉴는 콩나물밥과 콩나물국이다. 쉽고 간단하지만 아침에 주린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만한 메뉴다.
80명분의 쌀을 씻어 밥솥에 넣는다. 이렇게 많은 양의 밥은 생전 처음 해본다. 불을 켜고 얼마 있으니 밥 짓는 냄새가 주방 가득 퍼져나간다. 나는 콩나물 밥 위에 고명처럼 얹을 다진 고기를 볶기 시작한다. 갈비 양념을 넣어 볶으니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게 제법 먹음직스럽다. 남자들은 싱크대 앞에서 파를 씻고 다듬는다. 어제 엄마 찬스로 미리 준비해 간 양념장을 조금씩 덜어 각 테이블마다 놔둔다.
예배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갈수록 우리들 손이 바빠진다. 고슬고슬 갓 지은 밥을 각 접시에 덜고 그 위에 갓 삶은 콩나물과 다진 고기를 얹고 그 위에 송송 썬 파를 조금 뿌린다. 콩나물 삶은 물로 끓인 콩나물국도 국그릇에 담는다. 이제 양념장만 각자 기호에 맞게 밥에 넣어 비벼 먹으면 된다.
예배가 끝나고 성도님들이 나와 우리가 준비한 밥을 맛있게 드신다. 맛있다며 한 그릇 더 가져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젊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나와 애찬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모두 너무 기특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더불어 밥도 너무 맛있다며 엄지척을 날리신다.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고생한 보람이 있다.
누군가는 교회에 밥 먹으러 왔느냐며 교회 밥에 열심인 사람들을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교회에 밥 먹으러 다닌 적이 있어서 교회 밥이 귀한 줄 안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한국사람 하나 없는 마을에 교환학생을 가게 된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나는 백인 호스트 패밀리 집에서 매일 양식만 물리게 먹었다. 그러다가 주일이면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작은 한인 교회에 가서 먹는 점심밥과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종종 남은 반찬과 국을 싸서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그때 먹은 밥으로 나는 그 일 년의 시골생활을 버틸 수 있었지 싶다.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누군가는 매일 제 손으로 죽어라 밥만 차리다 남이 해주는 밥 한 끼에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고 매일 밥 할 시간이 없어 죄다 사먹기만 하다가 따뜻한 국에 만 밥 한 끼에 배 든든하게 집에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가 서로를 먹이면서 더 나누고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나도 오늘 매일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이 해주시는 밥만 얻어먹다가 따뜻한 밥 한 끼를 직접 준비하며 그동안의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 뿌듯했다. 조금 남은 밥을 싸들고 교회를 나선다. 이제 눈떠보니 엄마가 없어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어린 새들을 먹이러 간다. 집에서 나왔을 때와는 다르게 해가 반짝하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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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