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스포츠 제전에서 1등에게는 금메달, 2등에게는 은메달, 그리고 3등에겐 동메달이 수여된다. 성적에 대한 만족감이 순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가장 행복한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이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그런 만족감이 은메달 선수에 못 미쳐야 한다. 하지만 연구들에 따르면 의외로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관련 연구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이오와대학의 연구이다. 아이오와대 연구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부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5번의 하계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른 67개국 413명 선수의 시상식 사진을 표정분석 소프트웨어로 분석했다.
그 결과 동메달 선수가 은메달 선수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메달리스트의 순위가 더 높으니까 더 기뻐해야 할 것 같지만 연구 결과는 달랐다. 물론 가장 행복해 하는 건 금메달리스트들이다.
왜 직관에 반하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이런 역설적 상황이 ‘기대치’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은메달 수상자들의 경우 주로 ‘상향식 사후 가정 사고’를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식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정하는 사고법이다. 상향식 사후 가정 사고는 실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동메달 수상자는 ‘하향식 사후 가정 사고’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더 나쁜 결과를 가정하는 사고법이다. 상향식과는 반대로 안도, 기쁨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동반한다.
아이오와대학 연구팀은 선수들의 비교 잣대가 다른 것도 이런 현상의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은메달 선수는 금메달 선수와 비교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좀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땄을 텐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 은메달리스트의 행복감이 가장 크게 떨어지는 경우는 “1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 2위로 내려앉았을 경우나 1∼2위의 실력 차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일 때”라고 연구진을 설명했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미국 대표 팀의 분위기가 그랬다. 올림픽 6관왕이 유력하게 점쳐졌던 시몬 바일스의 기권으로 미국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1위를 내줬다. 미국 팀 분위기는 침울 그 자체였다. 반면 동메달을 획득한 영국은 약 100년 만에 따낸 단체전 메달에 감격해 눈물을 보였다.
15일 간의 열전을 마치고 지난 8일 폐막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비운의 은메달리스트들이 있었다. 3,000m 계주에서 막판 역전을 당해 금메달을 놓친 롤러스케이트 한국 남자 대표팀이다. 마지막 바퀴를 돌 때까지만 해도 선두를 달리던 한국은 결승선 바로 앞에서 대만에 역전을 허용했다.
마지막 주자는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승리를 예감했는지 허리를 펴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때 이른 세리머니에 나섰다. 그때 뒤에 있던 대만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왼발을 쭉 내밀며 한국선수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불과 0.01초 차이.
우승으로 착각하고 태극기 세리머니에 나섰던 한국 선수들은 뒤늦게 공식 기록을 확인한 뒤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시상대에 오른 한국 선수들은 침울하다 못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선수의 순간적 방심으로 금메달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일부 선수의 병역면제 혜택까지 날아갔기 때문이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한 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으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롤러스테이크 한국 대표 팀의 ‘속 쓰린 은메달’은 생생히 증언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