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의 공공정책에는 ‘야심찬’이란 수식어가 곧잘 어울린다. 기반시설 투자에서 그린 에너지 전환과 우크라이나 지원에 이르기까지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크고 대담하다.
백악관은 성공할 경우 게임 체인저가 될 또 하나의 중대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바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정상화다. 물론 쉽지 않은 과업이다. 관계국들은 숱한 위험 변수가 도사린 살얼음판 협상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성사만 된다면 중동 최강의 군사력과 기술력(이스라엘)이 전 세계 원유수급을 조정하는 이 지역 최고의 경제력(사우디아라비아)과 미국이 설계한 안보 우산 아래서 손을 맞잡게 된다. 양국의 국교 정상화는 워싱턴에 중요한 외교적 승리를 안겨줄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워싱턴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담당할 새로운 역할을 찾는데 골몰했다. 제국주의와 흡사한 과거의 역할에서 벗어나 미국의 국익을 지켜내면서도 러시아와 중국이 제기한 더 큰 도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동지역의 판을 새로 짜야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대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연성 동맹’(soft alliance)이 체결되면 양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동지역을 떠받치는 든든한 대들보 역할을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 역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우디측은 미국의 안보보장과 함께 핵에너지 산업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기술지원을 원한다. 여기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체적인 우라늄 농축 계획이 포함된다. (자생적 핵산업을 보유한 인도와 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우라늄을 국내에서 직접 농축하고 있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의 우라늄 농축을 지원한 예는 없다. 하지만 정부 소식통을 통해 필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양국은 미국의 통제 아래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시설을 짓는 방향으로 의견 접근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제공할 안보우산은 집단방위 원칙을 담은 나토 5조항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사우디아리비아가 공격을 받을 경우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몇 년간 그랬듯 사우디가 위기를 조장한 당사국일 경우 대응조치 조항은 발동되지 않는다는 명확한 조문이 필요하다. 또한 사우디는 유가에 미국의 이익을 반영하고, 자국 영토 안에 중국 군사시설을 허용치 않으며 유가를 계속 달러화로 표시해야 한다는 약속도 받아내야 한다. 이같은 이슈들이 해결된 이후에 워싱턴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안보우산을 펼쳐주어야 한다.
사실 (페르시아만은 미국의 국익에 대단한 중요한 지역이라는) 1980년의 카터 독드린 이후 워싱턴은 적성국의 걸프지역 개입을 산업계의 경제적 생명줄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실제로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하자 미국은 즉각 리야드 구조에 나섰다.
이번 협상의 최대 관건은 이스라엘에 달려있다. 협상에 나설 상대는 헌법을 바꾸고, 팔레스타인국가 건설을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우익 정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이스라엘을 움직일 여러 개의 지렛대를 손에 쥐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이번 거래를 원한다. 대규모 시위와 각종 소송에 휩쓸린 채 극단적 우파연합에 의존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워싱턴과 리야드가 공동작업을 펼친다면 팔레스타인들의 권리를 수십년 래 최대 폭으로 진전시킬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의 삼각동맹을 끌어낼 수 있다.
리야드와 워싱턴은 네타냐후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개의 국가로 공존하는 길을 계속 열어놓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는 웨스트뱅크의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중지하고, 이곳에 불법적으로 세워진 이스라엘 검문소를 철거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거주지를 확장할 수 있도록 현재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지역을 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조치는 네타냐후의 연정에 참여한 극우세력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그들은 웨스트 뱅크의 합병을 원한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날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마틴 인다이크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는 필자에게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에게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중대조치를 포함하는 전략적 대협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연정을 어떻게 관리할지, 아니면 연정을 해체하고 새로운 연합정권을 구성해야 할지는 네타냐후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맡겨두어야 한다. 바이든의 제안은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유익하다. 따라서 네타냐후 연정에 속한 극단주의자들이 바이든의 제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고 인다이크 전 대사는 강조했다.
사우디 정부가 사실상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없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약간의 양보 의사만 비치면 기꺼이 네타냐후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가정도 희망 섞인 관측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가정일 수 있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개방정책과 경제와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율법학자를 비롯한 보수적인 종교 세력과 거리를 두었다. 아마도 그는 팔레스타인을 포기함으로써 보수 세력의 분노를 자초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바이든이 지원사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일부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협정 비준의 대가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사우디의 진정어린 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진전시킬 역사적인 기회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잡음에 사로잡힌 허접한 극단주의 연합의 명줄을 이어갈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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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