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독선(獨善, self-righteousness)은 ‘나만 선하고 옳다’라는 심리상태를 말하는데, 현실에서는 소통을 잘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독선이 자칫 독단(獨斷, dogmatism)으로 이어지면 개인문제로 끝나지 않고 다른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행동으로까지 연결되면 마침내 독재(獨裁, dictatorship)에 이르게 되는데 그 종말은 대개 역사가 증명하듯 파멸로 치닫는다.
독선, 독단, 독재, 이 3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기생하기 어려운 독성들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하고 협치해 나가는 과정과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큰 가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우리가 이들 3독이 버젓이 나대는 조직과 사회의 일원이라면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3독을 행하는 사람들을 무심히 지나치고 간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첫째,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순수하며, 매사 열성적이며 헌신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차마 짚고 넘어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순수와 독선, 그리고 열성, 헌신과 독단, 독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를 꿰뚫어보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토양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오랜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의 영향도 있고, 가난의 덤불을 억척스럽게 헤쳐 나오고 민주화의 험한 가시밭을 일구는 전쟁 같은 과정에서 우리는 소통하고 화합하기 위해 기다리며 함께 하는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일사분란과 획일성의 강요에 익숙하게 되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3독의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에 다소 무감각하고 관대해지게 되었다.
3독의 폐해는 결국 세월이 그 민낯을 밝혀 심판하겠지만, 향후에 있을 불필요한 분쟁이나 소모전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의견개진 보장과 절차적 정당성이 잘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폴 김 / 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