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에 KPop 원조라고 불리던 그룹 소녀시대 멤버 서현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도산 안창호 기념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대한독립만세 8.15 광복절 National Liberation Day of Korea”라는 글과 함께 도산의 동상 옆에 앉아 포즈를 취한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마침 그 시기에 도산 선생의 외손자인 필립 안 커디씨가 한국을 방문해 경기도 거북섬에 있는 인공서핑장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서핑 교습을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출생해 1938년 3월 10일에 생을 마감한 국제적인 교육개혁운동가이자, 애국계몽운동가였다.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미국에서 이미 커뮤니티 빌딩과 리더십으로 주목받은 현인이었다.
도산의 딸 안수산 여사 역시 미 해군의 첫 아시아계 여성 장교이자 첫 여성 포병장교였다. 안 여사는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를 졸업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한인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미 해군 포격장교로 복무했고, 후에는 암호해독 부서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도산뿐 아니라, 안 여사가 미국내 한인들은커녕 모든 아시아계 미 여성들이 나아갈 길을 닦았던 롤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라는 한인2세들이 태반이다. 그레이스맹 의원이니, 캘리포니아의 영 김 의원이니 하면서 동시대 여성 정치인들이 눈앞에 있다고 그들만이 우리들의 정치유산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도산의 딸은 미 국무부 운영 웹사이트 ‘쉐어 아메리카’에 ‘미국의 영웅’이자 ‘선구자’로 소개돼 있을 정도다.
부친 도산 안창호는 몇 년 전에도 켄 쿨리라는 한 미국 정치인이 그의 이력을 동료 의원들에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차근차근 소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리버사이드 시는 안창호 동상을 건립했고, 메인 고속도로의 이름까지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인터체인지(Dosan Ahn Chang Ho Memorial Interchange)라고 개명했을 정도다. 가주의 리버사이드는 100년전 한인들의 센터같은 곳이었고, 미국내 도산 프로젝트인 파차파 캠프를 건설한 곳이기도 해 더욱 뜻이 깊었을 것이다.
도산은 한국인들에게는 독립운동가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른바 교민으로 13년간 살면서 커뮤니티 계몽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실제로 도산은 흥사단의 핵심멤버로서 미국내 한인들의 정신교육과 권익보호 등 조선의 독립운동 뿐 아니라 미주에 정착한 한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도산은 미국에 살면서 일부 한인들의 무지와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미국인들에게 비난받고 차별받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인들의 행동을 바르게 해서 커뮤니티의 모범이 되게 해야만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한인들이 낮은 시민의식으로 서로 헐뜯고 살지 말고 보다 생산적인 미국시민이 되자고 외쳤고, 생활의 모범을 주장하면서 교민들을 각성시키기 시작했다. 도산은 마침내 당시 교민사회의 대중적 지도자로서 공립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1902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갔지만 학교공부를 포기하고 한인들의 정신적 각성에 힘쓰게 된다.
현재 우리 주변에는 이승만 기념사업회니 박정희 기념사업회니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위인들을 기리는 조직들이 있다. 그러나 미주한인사회의 진정한 리더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점은 의아하다. 물론 공과가 있으니 그에게도 부정적인 점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00년전에 이미 한인커뮤니티에 훌륭한 리더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너도 나도 회장이라며 커뮤니티 리더라고 하지만, 실제로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안창호 선생의 탁월한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그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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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