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화 양당의 대선 주자를 뽑기 위한 첫 후보자 토론회는 향후 4년간 미국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정하기 위한 중요한 행사다. 그러나 지난 주 위스컨신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후보 토론회는 시작하기 전부터 맥이 빠졌다. 공화당 후보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루저 도널드가 아예 참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50%가 넘는 당내 지지율을 가진 그로서는 한자리 수 지지율 후보들과 같은 자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그는 다음 날 애틀랜타 교도소에 출두해야 하는 바쁜 일정도 남아 있었다. 지난 주 토론회를 지켜본 시청자 수가 1,200만 남짓으로 2015년 2,400만의 반토막 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날 나온 후보 중 한 명인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는 토론 직전 아킬레스 건이 파열돼 응급실에 실려갔다 겨우 나왔다는데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지지율 바닥을 기고 있는 아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도 사회자의 루저 도널드가 유죄 평결을 받아도 계속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토론 참가자 중 유일하게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을 때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참가자 중 ‘루저 도널드 저격수’로 관심을 모았던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토론 내내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다. 루저 도널드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 주인이겠으나 2016년 대선 때 루저 도널드를 가장 먼저 지지하다 한자리도 주지 않자 가장 열렬한 비판자로 돌아선 그의 행적으로 그에 대한 신뢰는 이미 금이 간 상태다.
4년간 충실하게 루저 도널드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다 마지막 순간에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라는 루저 도널드의 명을 어긴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경우도 그와 비슷하다. 그가 루저 도널드의 명을 거부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나 루저 도널드 광팬은 그것만으로도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는 그것만 가지고 그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흑인 편모 가정에서 자라나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자 연방 상원의원까지 올라가 대통령감으로 주목받았던 팀 스캇은 이렇다 할 정책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고 왜 루저 도널드 대신 자기가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밝히지 못한채 아무런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토론에서 가장 실망스런 인물은 한 때 루저 도널드 대항마로 유력시되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다. 아이비 리그 대학 출신 군 복무자로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하며 코로나 봉쇄를 거부하고 좌파와의 이념 전쟁으로 일약 공화당 스타로 떠오른 그는 작년 주지사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 한 때 일부 주에서 루저 도널드 인기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그는 인간보다는 로봇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루저 도널드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 줬다. 대선은 이력서가 아니라 사람을 뽑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날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인물임을 보여준 인간은 38살 난 하이텍 벤처 기업인 출신 비벡 라마스와미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푸틴과 딜을 해 우크라이나 지원 대신 영토 분쟁을 현 상태에서 고착화시키고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순진함을 넘어선 어리석음의 극치다. 미국의 지원이 끊긴 우크라이나를 푸틴이 왜 가만 두겠는가. 그는 또 대만을 2028년까지만 수호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시진핑 보고 그 후에 마음대로 침공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루저 도널드를 “21세기 최고 대통령”이라 부르며 열성 지지자임을 자처한 일이다.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대선 후보로 나왔는데 본인은 왜 출마했는지 의문이다. 루저 도널드의 부통령이 되고 싶다는 간원으로 들린다. 그는 루저 도널드의 미니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날 나온 후보 중 그나마 나은 인물은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였다. 그녀는 루저 도널드 집권 기간 미국 국채는 8조 달러가 늘어났으며 루저 도널드는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라고 지적하고 “그런 식으로 해 본선에서 우리는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루저 도널드가 기소되더라도 그에 대한 지지를 계속하겠다고 밝혀 스스로 자격 미달임을 실토했다.
이번 토론회가 열린 밀워키는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창당된 공화당의 발기인 대회가 열린 위스컨신 리폰에서 불과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다. 루저 도널드가 빠진 채 대선 주자가 되겠다고 토론회에 나온 8명의 모습은 한 때 위대했던 공화당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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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