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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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부패의 함수관계

2023-08-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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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갑오전쟁으로 불린다. 1894년 청나라와 일본 간에 벌어진 전쟁, 청일전쟁을.

청나라는 갑오년에 벌어진 이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하면서 사실상의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이 전쟁은 한국으로서도 망국의 서곡과 다름없다. 일본으로서는 군국주의로 변신하는 신호탄이 된 게 청일전쟁이다.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 청나라가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 당시 일반적 관측이었다.


비록 노쇠했지만 중국의 경제규모는 일본을 크게 능가했다. 거기다가 이홍장이 이끄는 북양함대는 당시로서는 최신 전함들로 구성돼 있었고 선박 수는 물론 화력에서도 일본 해군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막상 교전이 발발하자 예상 밖의 사태가 속출됐다. 청의 북양해군의 함대가 일본 해군 함정을 향해 거포를 발사했다. 그런데 그 포탄이 터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짜 포탄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탄약을 사들일 돈을 빼돌린 결과다.

북양육군의 사정도 비슷했다. 특히 조선에 파병된 청국군은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무뢰배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양 전투에 참전했던 한 지휘관은 고리대금업이 주업이고 지휘관은 부업이었다. 그는 부대 운영비와 병사들의 급료, 식대 등을 고리대금업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런데다가 청국은 전쟁 준비가 부족해 외국 상사를 통해 무기를 임시로 조달했는데, 그마저 수송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전방에선 총은 있으나 탄약이 없거나, 탄환이 먼저 도착하고 총은 도착하지 않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니 전쟁의 결과는 보나마나, 청군의 치욕적 대패였다.

한 세기가 훨씬 지난 현재 비슷한 일이 유라시아대륙 서부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다.

당초 예상은 러시아군의 압승이었다. 그러니까 러시아군의 전면적 침공을 맞이해 우크라이나군은 길어봤자 서너 주 버티는 게 고작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개전 18개월이 지난 현재 그 러시아군의 사상자 수는 30만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러시아군은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무엇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고 있나. 부패다.

국제투명성기구 2022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국방예산은 GDP의 4%, 620여억 달러 규모인데 이중 최소 20%에서 50%까지 내부 도적질, 부패 등으로 빼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최신 무기, 군 장비 구입에 상당한 액수가 지불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그런 무기나 장비는 어디까지나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경우기 허다하다.

군수물자 도입에서만 부정부패가 판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횡령에 독직, 부정으로 얼룩진 문화는 러시아군부 최상층은 물론 사병에 이르기까지 전군에 만연돼 있다고 할까. 가령 이런 식이다.

장성 급들은 군사위성을 구입한다며 수억 달러를 착복한다. 영관급 장교는 탱크 엔진을 내다 판다. 병참 장교들은 군사 장비들을 저당 잡아 팔아넘긴다.

하급 지휘관들은 예하 병력을 공사장 인부로 렌트해주고 돈을 챙기면서 사병들의 전투수당은 전투수당대로 착복한다. 사병들은 보급품을 마구 내다 판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로 앞두고 러시아 병사들은 막대한 양의 가솔린을 내다 팔아 공격군의 진격 속도가 늦어지기까지 했다는 것.

문제는 전군에 만연해 있는 이런 부패상황을 푸틴은 잘 모르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손자가 한 말이던가. 그 정반대 상황에서, 즉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였다. 그것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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