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었다. 사실 글보다 말을 하고 싶었다. 얼마 전 일어난 서이초 사건은 결국 누군가가 희생되어야만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었다. 그것도 학교 내에서 희생되어야 모든 사람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일이었다. 꽃같이 이쁘게만 기르셨을 부모님의 천불을 싸안고 우는 가슴 절절함이 먼 이국땅에 사는 나에게까지 생생히 전해오는 이유는 나 또한 비슷한 나이의 딸을 가진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타계를 시작으로 그동안 겪어왔던 선생님들의 인권이 도마 위로 올라왔고 미투처럼 너도나도 봇물이 터지고 있다. 우연인지 몰라도 1980년대 전교조의 시작은 학생들의 인권을 바로 세워야한다는 취지였지만, 오히려 선생님의 인권이 발목 잡혔다. 선생님의 무서운 회초리는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가 되어 급기야 교실에서 잠을 자는 학생도 깨우지 못하는 그저 수업시간을 지키는 어른이 되었고 혼이라도 낼라치면 아이들이 일제히 휴대폰으로 찍어 부모님께 전송해서 고발을 당하는 그런 학교가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전교조의 희망찬 출발은 결코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는 소리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나 나올법한 옛날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미술 시간에 비싼 물감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귀 방망이를 맞았다거나, 음악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 년간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는 일화나,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고 손바닥을 수차례 맞아 피멍이 들었다는 이야기들… 우리 학창시절, 불가항적인 손찌검으로 얼룩진 딱 그런 선생님이 다시는 학교에 발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운동이 전교조였다.
하지만 동시에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한 자녀 가정에서 금쪽같이 자란 아이가 선생님이 되고 부모님이 된 세대와 일직선상에 서면서 이번 서이초 같은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젠 선생님이 돈 있는 학부모와 학생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시절이 되었고 학생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침범하는 행위는 곧 선생님의 처벌로 이어지는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학생과 선생님의 인권은 한 치도 다르지 않고 동등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미국의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교육만큼은 미국의 시스템이 한국보다 잘 되어 있고 학원 수업이 필요 없을 만큼 공교육이 잘 되어있다. 미국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미술 하는 학생, 운동하는 학생 그 외에 잘하는 모든 걸 존중해주기 때문에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하는 편향적인 한국적 교육과는 그 사고가 다르다.
공부만이 최고라는 공부 우월주의가 낳은 비현실적인 흐름이 우리 아이를 병들게 하고 있다. 나는 글을 잘 쓰고, 너는 음악을 잘하고, 다른 친구는 춤을 잘 추고, 또 다른 친구는 화장을 잘한다는 걸 모두가 인정해주고 응원해준다면 다같이 행복할 수 있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안다. 땅덩어리는 작은데 인구는 많고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부지런하고 똑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고 그랬기에 지금 세계를 주무르는 동방의 작지만 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개천에서 용 났던 시절의 갑옷은 벗어던져도 될 세상이 되었음 또한 인지해야한다.
지금 세계를 들뜨게 하는 것은 바로 한류다. 한류를 이끄는 젊은이들이 공부를 잘해서인가? 우리 모두가 그렇게 바라는 의사나 변호사인가? 타고난 모양과 성질이 다른 모두에게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벗어나야 한다.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며 무슨 일이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한국인일 때 서이초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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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