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회는 공적자산, 누구나 편하게 사용하세요”

2023-07-23 (일)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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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년 맞이한 우리교회,‘공유목회’비전 발표

“교회는 공적자산, 누구나 편하게 사용하세요”

VA 페어팩스 스테이션에 위치한 우리교회는 15에이커 부지에 본당, 교육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문의: (703)425-1972. 주소: 7200 Ox Rd, Fairfax Station, VA 22039

“지역사회에‘우리교회’라고 불릴 수 있는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어느덧 5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희년을 맞아‘리셋, 다시 출발하자’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50년을 준비하며 이제 조심스럽게 공유목회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은 교회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영어권 EM 목회도 함께 하며 경쟁이 아닌 사역의 기회를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스테이션에 위치한 우리교회의 양승원 목사는 20일 본보를 방문해 새로운 희년을 시작하는 우리교회의 비전을 소개했다.

양 목사는“올해 교회의 모든 부채를 청산했다”며“50년이 넘는 역사를 함께 한 한인사회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그간 우리교회를 거쳐간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우리교회는 교회의 자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적자산”이라며“움켜쥐는 교회가 아닌 내어주는 교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주님의 숲’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주님의 숲’은 무엇인가?

▲지난 몇 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가 문을 닫고 성도들도 떠났다. 떠난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뉴스도 들린다. 이민 목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준비해온 공유목회를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교회는 우리만 생각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두가 우리가 되는 교회다. 자기 교회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고 무분별한 경쟁을 부추긴 측면이 적지 않다. 15에이커에 달하는 우리교회는 예배당이 필요한 작은 교회들, 교육장소가 필요한 사역자, 예식장이나 공연, 행사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소를 제공한다. 교회는 공적자산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주님의 숲’이라고 불린다.

-여러 교회들이 어떻게 교회건물을 공유할 수 있나?

▲스타트업 회사들이 사무실을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 다른 기술업체들이 각자의 사무실을 사용하면서 회의실, 주방, 편의시설 등은 공유해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이러한 효율적인 방식을 교회에도 적용해 굳이 대규모 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는 작은 교회들이 각각 필요한 부분만 사용하고 대부분의 시설을 공유할 경우 많은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목회나 교회 운영 등은 일체 간섭하지 않고 장소만 공유하는 것이다. 특히 별도의 어린이 사역이나 영어권 교회를 운영하기 힘든 한인교회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 교회들이 함께 하면 서로 도우며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다.

-우리교회를 다른 교회와 공유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


▲이민목회를 하면서 다른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부흥도 경험했고 많은 교인들이 떠나가는 것도 지켜봤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시기를 버텨내면서 이제는 다른 목회자들의 고민도 상담해줄 만큼 내공을 쌓았다. 어려움에 처하면 시간을 끌지 말고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공론화해 오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교회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민 인구가 줄면서 한인교회의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다민족교회, 공유목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움켜쥐지 말고 내어주어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교회의 리셋은 다른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교회가 수백명 규모의 대형교회였다면 공유목회를 시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이 기회이고 우리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공유목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의 생각,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하려해도 음모와 정치가 끼어들고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러한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다시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다.

어느덧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가 됐지만 공유목회를 시도하면서 지금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당장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누군가 시작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에서 힘들다면 다음세대를 대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길 바란다.

-굳이 어려운 일을 시도하는 이유는?

▲일부에서는 우리교회 일이나 잘 하시지, 왜 자꾸 일을 만드냐고 묻는다. 그러나 어려울 때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당장 열매를 보지 못한다고 씨 뿌리는 일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 서해안가의 어민들은 추운 겨울 ‘갯따기’라는 작업을 한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들어가 바위를 깨끗이 닦는 일이다. 그래야 봄에 신선한 해산물이 바위에 붙어 자라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내고 갯따기를 하는 것이다. 다가올 봄을 준비하며 기꺼이 추운 바다에 들어갈 각오가 돼 있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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