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과 민주당이 재정적자 감축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의 채무불이행 사태로 글로벌 경제 전체가 위기를 맞더라도 연방부채한도인상을 허용치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던 공화당 의원들이 정부의 재정적자를 확대하게 될 또 하나의 법안을 제출했다.
지난주 하원세출소위원회는 국세청의 2024회계연도 기금을 다룬 법안의 수정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이 법안은 국세청(IRS) 연간 예산의 약 9%에 해당하는 10억 달러를 삭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법안 통과시 IRS 지출은 2000년대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정부기관의 지출삭감은 흔히 ‘예산 절약’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안하지만 그건 오해다.
대부분의 정부 지출과 달리, IRS의 지출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국고 수입으로 연결된다. IRS가 해당 책정 받은 예산을 미납부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사용할 경우 특히 그렇다. 하지만 공화당이 요구한 지출삭감은 IRS의 세금추징 분야에 집중되어있다. 재무부는 세금추징에 사용될 IRS 자금을 덜어낼 경우 세금납부를 기피하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감사역량이 제한되면서 86억 달러에 달하는 세수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새로 제출된 IRS 예산감축안은 양당합의로 마련된 부채한도상향조정법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법안이다. 최근 양당합의로 제정된 부채한도상향조정법은 IRS에 책정된 기존 예산 가운데 14억 달러를 환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백악관과 공화당은 지난 5월, IRS 예산에서 200억 달러를 의무적으로 덜어내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말하자면 정부의 자체적 기금조달 수단을 제거하려는 3건의 시도가 공화당 주도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IRS는 “천번의 난도질”을 당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들 중 IRS와 관련된 가장 최근 법안에는 일반 납세자들이 무료로 전자 세금보고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IRS 서비스 프로그램 개발비의 전액 삭감을 명시적으로 못 박아 놓는 등 반소비자적인 내용도 담겨있다. 이 프로그램은 내년에 시범 실시될 예정이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속절없이 사장되고 만다.
공화당의 재정의무 준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법제정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세입위원회는 지난 6월 ‘미국 가족 및 일자리법’으로 명명된 대규모 세금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명칭과는 달리 이 법안은 미국의 가정을 돕기 위한 조치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시효만료가 되기 전까지 아동빈곤 수준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한 부양아동세금공제확대법은 갱신하지 않는다. 반면 일부 대기업에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조항의 법적 시효를 되살려 소급적용한다. 이와 함께 표준세액공제도 인상된다.
부연해 설명하자면 미국 정부가 기존 세수로는 감당이 안될 만큼 덩치가 크다고 주장해온 공화당은 세수를 바짝 줄이는 방식으로 이같은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연방예산책임위원회의 추산에 따르면 세법안은 향후 10년에 걸쳐 이자를 포함해 총 800억 달러의 지출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세법안이 열거한 모든 조치의 소요비용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왜 그럴까? 법안에 명시된 최대 규모의 세제혜택은 공식적으로 2025년 말에 종료된다. 너무 비싼 법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시효만료 조항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2025년이 되면 공화당은 늘 그랬듯 세제혜택 연장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임시조치가 영구화될 경우 공화당 세법안의 지출규모는 10년간 1조 1,000억 달러에 달하게 된다.
공정하게 말해 민주당 정치인들 역시 균형예산 의무를 성실히 지키려 들지 않는다. 공화당 의원들과 다를바 없이 민주당 역시 적자 감소에 소극적이라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예산안에서 재정적자를 현저히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예산안에는 트럼프의 2017년도 감세조치를 연장하는데 따른 막대한 비용이 계상되지 않았다.
그나마 바이든은 최소한 어디에 얼마를 지출하느냐를 일러주는 일종의 재정 지출안을 갖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그렇지 않다. 최근 공화당연구위원회가 공개한 ‘청사진’을 예산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달리 내놓을 게 없다. 청사진에는 올해 초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 캘리포니아)이 손대지 않겠다고 천명한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에 관한 정책 변경안이 담겨 있다.
아마도 우리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한다거나 혹은 그런 시늉을 하는 사람조차 없는 예산 담론의 자연 상태로 돌아간 것인지 모른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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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