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오랫동안 메아리 칠 대법원 판결

2023-07-04 (화)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지난 주 연방 대법원은 교육에 관한 역사적인 판결을 두 개 내렸다. 첫 번째는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란 단체가 하버드와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의 입학 사정시 인종 고려를 금지해달라고 낸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시했다.

9명의 대법관 중 6명의 지지를 얻은 다수 의견을 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하버드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입학 기준은 (수정 헌법 14조의) ‘평등 보호 조항’의 약속과 양립될 수 없다”며 따라서 이는 위헌이고 무효라고 밝혔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과거 “인종 차별을 끝내기 위해서는 인종 차별을 끝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연방 대법원은 2003년 인종을 입학 기준의 하나로 삼는 것을 허용하면서 25년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후에도 이들 두 대학이 이를 종식시키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자 언제까지나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과거 흑인 등이 받아온 인종 차별에 대한 배상과 인종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소수계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의 하나로 시작된 대입 사정시 인종 고려는 선의에 기반을 둔 것임은 분명하다. 이로 인해 많은 흑인과 라티노들은 대학에 처음 발을 디디고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그 부작용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이들이 우대를 받는 바람에 백인과 아시안은 이들과 같은 성적을 가지고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과거 백인들이 한 잘못으로 그 후손인 백인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아시안은 19세기 중반 중국 이민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이래 100년 동안 모진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다. 그런 피해를 입은 아시안계의 후손을 아시안이란 이유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에서 가장 아시안이 많은 가주에서 대입 사정시 인종을 고려할 수 없게 한 주민발의안 209가 1996년 통과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리버럴 진영에서는 이를 뒤집기 위해 2020년 대입 사정 기준으로 인종 고려를 허용하는 주민발의안 16을 상정했으나 56.1% 대 43.9%로 부결됐다. 이는 1996년의 54.5% 대 45.5%보다 표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리버럴한 가주 주민조차 이를 원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퓨 리서치를 비롯한 각종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도 흑인과 라티노 등을 포함 모든 인종에 걸쳐 과반수가 인종 고려 없는 대입 사정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판결은 대학이 단순한 인종 고려는 안 되지만 지원자가 에세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인종 차별을 극복한 경우 그 용기와 결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소수계에게 개별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길은 열어놨다.

연방 대법원은 교육에 관한 두 번째 판결에서 6대 3으로 바이든이 내린 학자금 융자 탕감 조치가 대통령의 권한을 초과한 것이라며 무효로 판시했다. 바이든은 전쟁이나 비상 사태의 경우 교육부 장관이 학자금 융자액을 조정이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한 ‘영웅법’을 근거로 4,300억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융자를 탕감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정도 액수의 융자 상환을 면제하면서 이를 “조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 프랑스 귀족들의 지위를 “조정”했다고 부르는 것과 같다며 프랑스 혁명은 이들을 “폐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소수 의견을 낸 세 명의 리버럴 대법관은 대통령에게 그럴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2021년 당시 연방 하원의장이던 낸시 펠로시마저 이런 정도의 액수를 탕감할 권한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학자금 탕감안도 부채로 고통받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선의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바이든 안은 연소득 12만5,000달러 미만까지의 융자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데 학자금 융자를 통해 대학을 나오고 그 덕에 미국인 평균 소득의 2배에 달하는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에게까지 학자금을 면제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될 경우 이로 인해 늘어난 부채는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과 성실히 빚을 갚은 사람들이 갚아나가야 한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겠다면 연방 헌법에 의해 ‘지갑의 힘’을 부여받은 의회의 동의를 얻는 것이 정도다.

앞으로 오랫 동안 미국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칠 연방 대법원의 두 결정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첫 걸음이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