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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기준을 둘러싼 논란

2023-06-21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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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반응을 불러오진 않았지만 눈여겨 보아야할 법안이 상원에 상정됐다. 양당합의로 마련된 탄소배출법안이 그것이다. 크리스토퍼 A. 쿤스(민주당-델라웨어)와 케빈 크레이머(공화-노스 다코타) 및 일곱명의 상원의원이 공동으로 상정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정부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만들어지는 산업용 자재의 탄소집약도를 계산하게 된다.

이 법안은 탄소국경관세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탄소배출법안은 기존의 것보다 광범위한 탄소세, 혹은 다른 주요 기후관련조치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아울러 담당하게 된다.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법안이다.

그러나 지금은 탄소배출법안이 양당 합의로 상정됐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무언가 측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법안에 양당이 합의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기념할만한 일이다.


지난 수년간, 진실이 사라지고, 대체사실이 난무하는 정치지형에서 “정확한 계산과 측정”을 중시하는 견해는 늘 거센 논쟁에 휩쓸렸다. 특히나 도널드 트럼프는 재임기간중 인구조사국과 경제연구서비스(ERS)를 비롯한 독립적인 정부산하 통계기구의 해체, 혹은 무력화를 시도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들 비정파 기구들은 우리 경제와 민주주의체제가 제대로 기능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트럼프와 그의 하수인들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측정을 정치적으로 불편하게 여겼다.

진보적 좌파에 속한 일부 정치인도 특정한 규정의 비용-편익 분석과 재정소요법안에 대한 전통적인 법안비용추계가 대기업, 혹은 보수적 이념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작된 계산이라며 못마땅해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정부의 회계담당자들이야말로 워싱턴 정가를 쥐락펴락하는 실세라고 확신한다. 최근의 부채한도 조정과 관련해 그들이 해법으로 내놓은 예산 꼼수가 그 증거다.) 이는 객관적이어야 할 척도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에서는 5-6년마다 한번씩 경제적 출력과 국내총생산을 측정하는 전통적 기준의 폐기여부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다. 기존의 척도로는 대중이 느끼는 행복과 스트레스 및 공공복지의 다른 중요한 지표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폐지론의 주된 근거다.

잘못된 측정기준은 정책결정자들을 틀린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옭아맨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기존의 측정기준이나 모델을 내던져 버리고 싶은 유혹을 종종 받게 된다. 특정 지표나 수치가 자신이 속한 팀에 불리하게 나온 경우 유혹은 더욱 커진다. 최근 보수진영이 강력한 일자리 수치를 가짜라고 주장하거나 진보진영이 인플레와 소비자신뢰지수가 잘못됐다고 우기는 것이 좋은 예에 속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하자가 있는 측정기준의 경우 완전히 폐기할 게 아니라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표준척도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정부의 통계를 대놓고 불신하거나 통계기관 공무원들을 무능하다고 싸잡아 비난해서도 안 된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초당적 법안이 상원에 상정된 동기는 다소 복잡하다. 여야 의원들이 그저 우리의 주변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수량화하거나 평가하기 위해 기후변화측정과 관련된 법안을 공동으로 발의한 것이 아니다. 물론 기존의 기후관련 척도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부적절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초당적 시도는 바람직하다.

예컨대 기후변화의 경제적 결과를 추산하는 기존의 모델은 뉴욕 상공을 뒤덮은 캐나다 산불연기로 인해 발생한 실제 경비를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며칠간 짙게 드리워진 연기로 항공기 운항이 무더기로 중단됐고, 프로 야구 경기가 취소되거나 연기됐으며 근로자들의 출근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상당한 경비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모델은 이같은 요소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사실 탄소배출법안은 공화, 민주 양당이 힘을 합쳐 더 큰 적에 대항하는 데이터 전쟁의 신호탄일 수 있다. 다른 국가들은 이미 탄소국경관세를 만들기 위해 이런 종류의 표준척도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문제 실무자였던 조지 데이비드 뱅스는 최근 E&E 뉴스에 출연해 “우리가 새로운 표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유럽이 우리의 표준을 대신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후와 관련이 있는 모든 수치들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마도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 탄소배출법안의 법제화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계속된 정책 싸움에서 우리는 불량한 표준 척도가 불량한 진단으로 이어지고, 결국 형편없는 해법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배웠어야 한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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