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근교, 한인 주거 밀집지를 말할 때 대표적으로 이야기되는 곳의 한 주민은 주택보험을 갱신하려다 뜻밖의 경험을 했다. 자동차와 함께 집 보험을 봐 주고 있는 에이전트로부터 보험사에서 갱신 허가가 나지 않았다며 기다려 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원인은 산불 위험 지역인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산이랄 것도 없는 동네 뒤 언덕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건너편에 골프장이 있고, 큰 나무도 없는 황량한 곳이어서 잡목만 좀 태우다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특히 사는 집은 여기서도 상당히 떨어진 평지여서 평소 산불 생각은 전혀 못하던 곳이었다.
보험이란 원래 소비자가 쇼핑하는 것 아닌가. 보험료를 절약하려면 몇 년에 한 번씩 보험사를 바꾸는 것을 고려하라는 전문가 조언도 있다. 10년이상 한 보험사에서 매년 자동 갱신해 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주택보험은 얼마 뒤 ‘가입 허락’을 받았으나 달라진 업계 현황을 실감해야 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주택보험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던 스테이트 팜과 올스테이트가 올해도 방침에 변화가 없음을 얼마 전 확인했다. 부동산 보험과 대표적인 손해보험 분야인 자동차 보험에서 각각 미국에서 1위와 4위에 올라 있는 큰 회사들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충격이겠으나 놀라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단골 재난 지역의 주택 보험이 위기에 처해 있다.
손해보험 업계에서는 지난 92년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앤드류가 경보음이었다고 한다. 이 때 160억달러를 날렸다. 주택 보험의 위기가 떠 오르기 시작했다. 플로리다와 함께 허리케인 상습 피해지역인 루이지애나에서는 최근 2년새 12개의 보험사가 지급 불능사태에 빠졌다. 타지역 주민들의 귀에도 낯설지 않은 허리케인 아이다, 허리케인 로라 등 잇단 태풍이 원인이었다. 기후 변화와 맞물려 자연 재해의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보험사들의 주택보험 시장 퇴각은 철수 여부가 아니라 ‘언제인가’ 하는 시간 문제라는 견해가 있다.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보험사도 보험에 든다. 재보험을 말한다. 들어 놔야 막대한 재난 피해를 보상해 줄 수 있다. 그 재보험료가 지난해 25%에 이어, 올해 다시 평균 33% 올랐다. 보험 회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승 폭이다. 그렇다고 재보험에 들지 않을 수 없다. 책임있는 보험사가 도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험은 철저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보험사들은 가지고 있는 주요 상품들인 자동차, 주택, 의료, 생명 보험 등 포트폴리오를 치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닥칠 수 있는 리스크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일부 대형 보험사들은 캘리포니아 주택 시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재난 리스크가 정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을 내렸다. 또 다른 산불 위험 지역인 애리조나, 콜로라도 등에 비해 캘리포니아는 더 불리하다. 보험과 관련한 주법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보험료 인상을 제한하고 있다. 기존 계약의 파기도 어렵다. 보험 커버 범위도 일정 정도 이상을 요구한다. 소비자 보호라는 면에서는 좋으나 보험사는 어렵다. 위험도에 맞는 적정 보험료 책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주택 가격도 다른 주에 비해 비싸다. 산불 위험 가능성이 큰 지역의 고가 주택이 우선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형 산불 뒤에 닥칠 수 있는 산사태 피해도 주택보험으로 보상해야 한다. 이번처럼 겨울 홍수가 급습한 후 곳곳에서 진흙 사태가 벌어지면 감당이 어렵다. 보험사들이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이유로 드는 것들이다.
이렇게 되면 주택은 주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험이나 주 정부 운영 보험이 나오면 거기 들 수밖에 없다. 비싼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고, 커버리지는 축소된다. 지진 보험의 재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집을 살 때 이제 보험 가입에 문제가 없을 지 미리 따져 봐야 한다. 매매 계약 때 이를 조건에 포함(contingency) 하는 게 좋다는 것이 전문가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