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히 리베 디히’는 누구나 사랑하는 베토벤의 아름다운 가곡이다. 그 시절 고등학교 음악과목에는 이론 말고도 실기 테스트가 있었으니 나 같은 음치에겐 기말고사 평균점수를 까먹는 넘지 못할 장벽이었다. 한 주 전, 음악선생님이 실기 주제곡을 알려주었다. “이히 리베 디히. 원어로 외워서 불러야 한다. 알겠나!” 난 그때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시범 케이스, 뜨거운 가슴으로 목하 10대 연애 중이었으므로 사랑을 읊어대는 독일 명가곡의 가사가 한 구절 한 구절 심장에 들어와 별처럼 박혀있었다. 이히 리베 디히 조 비두 미히~~ 그대가 날 사랑하듯 나도 그대를 사랑하오 저녁에도 아침에도?언제나?변함없이… 슬플 때면 그대, 날 위로해주었고 그대가 비탄에 잠길 때 나는 울었다오….
이 곡이라면 불러볼 수 있지! 이번 음악 실기 점수는 자신 있어! 그러나 결과는 비극. 감정 잡고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첫 소절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의 피아노반주가 꽝! 하고 끊어지면서 “됐어! 그만! 다음 학생!” 잔인도 하시어라. 그래서 나는 지금껏 노래 부르기가 싫다. 졸업 후 남성 일색인 직장엘 들어갔는데 업무특성상 퇴근 개념도 따로 없었으려니와 해질녘 분위기는 한마디로 음주가무가 대세. 회사 근처 노래방엔 노래 번호 0001부터 9999까지 몇 바퀴를 돌아도 동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목청을 뽑았다. 대중화된 가라오케의 공덕이려나? 내 귀에 한국인은 죄다 가수 같다.
당시 일본 유수 일간지의 서울 특파원이던 일본 기자 아무개가 ‘내가 본 한국인’이라는 책을 냈는데 그는 한국인의 노래 열정을 이렇게 썼다. “참 이상하다. 한국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노래를 부르고 논다. 모임에서 가끔 안 부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끌어다가 한 곡을 부르게 하고야 만다. 근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이 정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아무도 안 듣고 자기네끼리 떠든다는 점이다.”
며칠 전 케이타운 내 식당에 갔다가 우연히 닥터 H 커플을 만났다. 두 분은 국제무대를 두루 섭렵한 최고의 L콰이어 단원들이다. “케이! 요즘 우리 합창단원 새로 뽑고 있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 연습할 때 감동! 공연할 때 감격! 다음 공연은 카네기로 잡혔어요. 카네기홀에 같이 서봅시다.” 나는 교내 합창대회가 있을 때마다 맨 뒷줄에 어중간히 서서 앨토 좀 따라하다가 소프라노 파트 좀 따라하다가 결국 목소리는 안 내고 입술만 벙긋거렸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그 커플이 주변의 동갑들보다 더 활기차고, 스트레스 많은 개업의의 라이프를 잘 매니지 하는 데는, 매주 합창단에서 만나는 동료들과의 유대, 복식호흡으로 길어 올리는 목소리 작업, 그리고 각각의 특색이 모여 하나의 화음을 만드는 자기절제의 조화, 내면 감정의 긍정적 표현 효과가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병원, 요양시설, 청소년 집단치료에서 노래 부르기는 빼놓을 수 없는 심리/병리 치료 프로그램으로 채택된 지 오래다. 노래 부를 때 사용되는 호흡 근육 움직임이 파킨슨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든지, 산후우울증 감소, 실어증이나 뇌졸중 환자의 언어치료 효과,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의 감소 등 하버드의 수많은 연구결과가 노래 부르기의 놀라운 효과를 강조한다. 노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어디든 가시길 권한다. 지역 합창단으로, 교회 성가대로, 아니면 노래방이라도.
나는 듣는다. 오디오에 프릿츠 분덜리히를 걸어놓고 이히 리베 디히를 듣는다. 더 이상 음악 점수를 잘 받을 필요도 없고, 청춘의 감성을 시리게 하던 연애도 사라진지 오래인 지금, 맘 편히 두 다리 뻗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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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