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중간 선거와 2020년 대선, 2022년 중간 선거에서 진 후 성추행 관련 민사 소송에서 지고 포르노 배우에게 돈을 주고 입막음을 한 후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뉴욕 검찰에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에는 국가 기밀 문서를 반출한 후 반환을 거부하고 공무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지난 주 사상 처음 연방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연방 대배심은 트럼프를 37건의 스파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는데 이중 31건은 기밀 문서를 무단으로 소지한 혐의고 한 건은 비서와 사법 방해를 공모한 혐의며 나머지는 사법 당국에 거짓말한 혐의 등이다. 이번 혐의에 대해 모두 최고형이 내려질 경우 트럼프는 최고 4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는 신중해야함은 물론이다. 정권에 바뀐 후 기소할 경우 정치 보복이란 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을 어긴 증거가 뚜렷함에도 덮는다면 이는 ‘법 앞의 평등’이란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이번에 트럼프를 기소한 것은 무작위로 추출된 평범한 23명의 플로리다 주민이다. 잭 스미스 특별 검사가 재판 장소로 민주당 색채가 강한 워싱턴 DC가 아니라 공화당 쪽으로 기울어진 플로리다를 택한 것도 이번 케이스에 대한 그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기소장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란 공격 시나리오가 담긴 문서를 방문객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국가 기밀 문서라고 자랑을 하는가 하면 자기 변호사에게 갖고 있는 기밀 서류가 없다고 거짓말 하라고 한 것으로 돼 있다. 트럼프가 가지고 나온 문서 중에는 미국 핵무기와 테러리스트 조직 활동 등 극비 중에서도 극비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나 펜스 전 부통령 집에서도 기밀 문서가 나온 점을 들어 트럼프만 기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이들 케이스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모르거나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바이든과 펜스는 기밀 서류 유출 사실이 밝혀진 후 이를 연방 당국에 즉시 반환했고 유출 경위 조사와 관련해 당국에 전적으로 협조했다.
반면 트럼프는 처음부터 기밀 문서 소유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 나중에는 자기 변호사에게 그런 서류가 없다고 거짓말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이번에 검찰이 핵심 기소 사유로 제시한 것 중 하나가 트럼프로부터 거짓말을 하라고 종용받았다는 트럼프 변호사 에반 코코란의 증언이다. 트럼프는 코코란에게 힐러리 변호사가 힐러리 이메일 지운 것처럼 자신에게도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가 고객과 한 말은 ‘변호사 고객 특권’이란 이름으로 비밀이 보호돼지만 고객이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한 경우는 예외가 인정되는데 이번에 베릴 하월 연방 지법 판사가 이를 인정해 증언으로 채택된 것이다. 뉴욕 주 검찰 기소가 한 때 트럼프 최측근이었던 마이클 코언 변호사 증언에 기초한 것과 유사하다.
이번 기소장에는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가지고 나왔다 반환한 197개 상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기밀 서류가 잘못 딸려 나온 것이 발견됐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반환했으면 별 문제 없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DNA는 애당초 트럼프에게는 없다. 80이 가까운 그의 인생에서 그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지금도 자신에 대한 연방 검찰의 기소가 ‘마녀 사냥’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뻗대는 것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그것이 결국 이번에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연방 검찰의 이번 기소는 트럼프가 당면한 법적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지만 이것이 그의 대선 출마를 막지는 못한다. 기소가 아니라 유죄 평결이 나더라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번 기소가 그로서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에 도움이 될뿐 아니라 대통령이 돼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기소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한 공화당원들은 후원금과 몰표를 줄 수 있고 옥중에서라도 당선만 되면 자신을 기소한 특별 검사를 해임하고 스스로 사면해 감옥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직도 조지아 주의 2020년 대선 투표 결과를 불법으로 뒤집으려 했다는 혐의와 2021년 1월 6일 연방 의사당 폭도 난입을 선동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과연 미국민들이 이런 한심한 인간을 다시 대통령으로 택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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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