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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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로 가는 길

2023-05-31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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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서부영화 가운데서도 로버트 미첨 등이 주연한 ‘The Way West- 서부로 가는 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1967년 앤드류 V. 맥라글렌 감독이 만든 ‘서부로 가는 길’은 19세기 중반 3명의 사나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면서 서부로, 서부로 향하던 사랑과 희망의 대 서사시였다.

미국인들의 역사가 동부에서 서부로 펼쳐졌던 것에 비해 우리 한민족은 그 반대로 서부에서 동부로, 동부로 이어져 갔다. 한민족이 한반도에 자리 잡기 전 어디서 살았느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시베리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바이칼 호 주변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신석기 시대에 이 바이칼 호에 거대한 홍수가 닥쳐와 여기를 탈출한 선조들이 동쪽으로 이동해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고, 이들 북방계 민족이 해양에서 건너온 다른 남방계와 섞여 우리 한민족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역사에서는 동쪽에 사는 이들을 동이(東夷)라 했다.


옛 부터 우리 민족은 유달리 동쪽을 좋아했다. 해가 솟아오르는 동녘은 새로움과 부흥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1903년 하와이 이민도 가난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하와이에 이주한 한인들은 그 뒤로도 동으로 향한 꿈을 멈추지 않고 샌프란시스코로, 로스앤젤레스로 상륙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장한 로스앤젤레스는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에 이어 민주화운동, 평화운동의 요람지였는데 이곳에서 훌륭한 선후배들과 더불어 한 시대를 살았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동안 주류사회로의 정치인 배출도 괄목할 만했다.

내가 이 자랑스러운 도시를 떠나 동부로 가기로 한 것은 요즘 ‘탈 LA’ 하는 젊은이들 생각과는 달리 거기에 사는 두 아이들 가족과 노년을 함께 지내려는 핏줄의 본능 때문이다. 그런데다 본시 역마직성이 있어 남은 세월동안 이 광활한 땅의 저쪽 켠에서도 살아보고 싶은 늦깎이 충동도 있기는 했었다.

내게 있어 이번은 세 번째 이민이다. 1981년 6월 김포공항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온 것이 첫 번째이고 1989년 2월 기적 같이 찾아온 9년 만의 복직으로 서울로 간 것이 역이민 성격의 두 번째 이민이었다. 그리고 2023년 6월 뉴저지를 향해 떠나는 것이 타주로의 이주이지만 세 번째 이민이나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떠나는 마음은 비감(悲感)이다. 로스앤젤레스가 우리 충주 김씨에게는 바이칼 호 같은 이민 발원지이기도 했는데 매정하게 그 고향을 등지다니-. 정든 땅, 정든 사람들, 그리고 태평양 연안 메모리얼 파크에 잠드신 사랑하는 부모님을 두고 가는 마음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784 마일 되는 대륙을 건너 동쪽 끝으로 간다.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이 ‘강하고 담대하라’며 성경의 여호수아 1장 9절을 전해준다.

10년 전 이민 110주년 기념행사를 동행취재 했을 때는 버스로 13박 14일 간 대륙을 횡단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구와 자동차를 트럭에 실어 보내고 나와 아내는 5시간 걸리는 비행기 편을 택했다. 42년의 긴 세월, 그래서 함께 지냈던 모든 동포들에게도 긴 작별인사를 드린다. 안녕, 안녕, 안녕히….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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