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림의 여왕’에서 최고령 수영복모델로

2023-05-24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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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의 언론들은 81세 할머니가 스포츠잡지의 수영복 표지모델로 등장한 사실을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주인공은 ‘살림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 팔순을 넘긴 나이에 섹시한 자태를 뽐내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커버모델이 되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매년 5월 톱모델들을 기용한 수영복 특집호를 발행하는데, 올해 4명을 찍은 4종의 표지 가운데 하나가 파격적인 마사 스튜어트 커버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팽팽하고 육감적인 20~30대의 모델들보다 스튜어트의 커버가 훨씬 더 많은 인기와 주목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웹사이트의 갤러리에 들어가 보면 그녀가 도미니카공화국의 리조트에서 10여개의 수영복을 입고 각종 포즈를 취한 사진들과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도무지 81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들이라 촬영 때 필터나 인핸서(enhancer)를 썼거나 포토샵으로 보정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은 아니라고 하니, 타고난 유전자가 젊은 건지 관리를 엄청나게 잘 하는 건지 놀라울 뿐이다.


마사 스튜어트는 뛰어난 살림솜씨를 기업차원으로 끌어올려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로, 포춘지와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의 최고 영향력 있는 인물’ 명단에 해마다 오른 입지전적 여성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늘 구질구질한 살림에 지친 엄마들에게 마법사처럼 근사한 해법을 제시하며 주부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그녀는 베스트셀러 책을 쓰고,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미 전역을 돌며 강의도 했다. ‘마사 스튜어트 리빙’이라는 잡지도 발행했고, 인터넷 사이트(marthastewart.com)를 오픈했으며 K마트와 계약해 자신의 브랜드 상품을 파는 한편 이 사업을 모두 아우르는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를 설립해 1999년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2002년, 주식부당거래와 위증죄에 휘말려 5개월 동안 수감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고, 출소 이후 많은 노력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으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번 SI 표지모델 기회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할 크나큰 기회였다.

처음 모델 제안이 들어왔을 때 “관습에 굴복할 필요가 없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스튜어트는 “아직 건강하고 몸매와 자세, 피부와 헤어가 좋은 상태여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두 달의 준비과정 동안 빵과 파스타를 끊고 일주일에 최소 세 번 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을 만들었다는 그는 “변화가 끝나면 인생도 끝이다”라는 좌우명에 따라 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혁신해왔다고 젊음의 비결을 전했다.

한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작년 수영복 특집호에도 4명의 커버모델 가운데 74세의 메이 머스크를 선정해 화제를 모았다. 메이 머스크는 테슬라 대표이며 세계 최고부자인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로, 50년 넘게 모델로 활동해온 경력을 갖고 있다.

중년을 넘긴 50대 후반부터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와 짧은 머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모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67세에 버진아메리카 항공 모델이 되었고, 디올과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 브랜드와 함께 보그에 등장했으며, 69세에 화장품회사 ‘커버걸’의 최고령 모델이 됐고 디오르의 뷰티 앰배서더가 됐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유명 모델이었던 건 아니다. 남편의 가정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다가 31세에 이혼한 그는 세 아들을 둔 싱글맘이자 수퍼맘으로서 사회의 편견에 맞서 투쟁하는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영양학 석사학위를 두 개 보유한 영양사이고, 2019년 회고록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A Woman Makes a Plan)를 출간하기도 한 머스크는 “70대인 지금이 전성기”라고 말한다. “삶은 살수록 더 좋아진다”는 그는 건강과 미모를 유지하는 비결로 “유행을 따르지 않고 과학과 상식을 따른다. 반 채식을 하고, 과하게 운동하지 않고, 미용 시술은 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마사 스튜어트와 메이 머스크가 이룬 성취를 보면 놀랍고 대단하다. 아니 두 여성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노년을 활기차고 멋지게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부럽고 경이롭다. 길어진 노년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의 지평을 활짝 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최고령 수영복 커버모델’ 소동을 지켜보는 동안 부럽고 경이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81세 여성의 아름다움이 수영복을 입은 몸매와 섹시함이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80세가 넘으면, 아니 70세만 넘어도 수영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나서기는 불편한 상태가 된다. 물론 수영복은 어떤 나이에도 입을 수 있지만, 수영복 모델이 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나이에 따라 아름다움과 섹시함의 기준은 바뀌기 마련이고, 성적인 매력이 중요하지 않은 나이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자기 나이로 보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찬미와 부러움을 그만두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나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미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준을 버리는 것,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것, 자신의 나이와 모습에 관대해지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고 노년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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