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잃은 얼굴
2023-05-22 (월)
이재순 인디애나
내 남편은 웃지 않는다. 화도 내지 않는다. 얼굴뿐 아니라 감정도 없다. 돌부처 같다. 그렇게 변해버린 지 4년이 넘었다. 그래도 우리는 늘 팔짱을 끼고 함께 다닌다. 잉꼬부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는 구태여 변명하고 싶지 않지만 거기에는 더 잔인한 현실이 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혹시나 넘어질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78세의 파킨슨병 환자이다. 파킨슨병은 운동신경이나 근육을 주관하는 도파민이라는 뇌 물질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아 일으키는 몸의 퇴화작용이다. 치매가 기억을 잃게 한다면 파킨슨은 몸 근육의 움직임 작용을 잃게 하는 병이다. 눈에 띄는 증상은 두 손의 떨림이다. 가만히 있는 손이 계속적으로 떨린다. 수전증과 비교한다면 반대현상이다. 수전증은 음식을 먹을 때 숟가락질을 할 수 없이 떨린다. 파킨슨의 떨림은 반대로 가만히 있을 때 심하게 떨다가 숟가락질을 할 때는 별로 떨지 않는다.
그 떨림은 서서히 얼굴로 향해서 잇몸을 떨게 한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입술이 저절로 뒤틀린다. 음식이 입안으로 깨끗이 들어가지 못한다. 턱과 입술 주위에 음식이 너절하게 붙어있다. 마치 이유식한 아이들이 입주위에 음식이 묻어있는 것 같다. 입술도 크게 벌려 음식을 먹지 못한다. 입에 고여 있던 침이 입만 벌리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안면근육 뿐만 아니라 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어간다. 그의 등은 거북이 등처럼 굽어 턱은 가슴에 닿도록 휘어져있다. 걸음걸이 또한 문제를 일으킨다. 종종걸음으로 매우 느리게 걷는다. 잘못하여 균형을 잃으면 쉽게 넘어질 수 있다. 옷도 본인 마음대로 입을 수 없다. 양말도 신겨줘야 하고 신발도 신겨준다.
밤에는 악몽에 시달린다. 괴성을 지르며 손과 발을 허공으로 휘저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얼른 흔들어 깨워 물어보면 꿈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들이받았다고 한다. 손발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얼음덩어리처럼 차디차다. 글씨 또한 잘 써지지 않는다. 늘 큼직하게 휘갈기던 글씨가 개미새끼 줄지어 걸어가는 것처럼 작고 단어가 바짝바짝 붙어있다. 물론 대화를 이어가는데도 느리다. 늘 위트가 넘치고 대화의 주인공이 되던 그가 언제부터인지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물론 함께 웃지도 않는다. 식사 시간은 두세 배 이상 느려졌다.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일상이 우리의 삶을 옥죄어가고 있다. 걷고 뛰고 밥 잘 먹고 배설하는 당연한 소소함이 큰 축복이라는 것도 우리는 깨우쳐갔다. 꽃냄새나 구수한 음식냄새를 맡는 것 또한 큰 특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애기를 보며 귀여워하고 웃는 소리를 들으며 웃을 수 있고 딱한 사정을 들으며 함께 슬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증거라는 것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즐거움,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의 자유가 얼마나 사는데 활력소가 된다는 것 또한 잃고 나면 알게 된다.
우리는 조심스레 호기심을 가지고 하루를 산다.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다. 가던 길을 되돌리지도 않는다. 그는 매일 기억을 더듬어 자서전을 쓴다. 벌써 네 권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파킨슨병의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했던 피클 볼이라는 운동을 계속한다. 피클 볼은 테니스와 탁구 중간 정도의 쉽고 재미있는 운동이어서 우리는 복식 파트너가 되어 함께 치러 다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기회가 오면 거절하지 않는 호기심으로 삶의 추억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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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인디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