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팝송산책] 정열의 가희 이춘희 (2)

2023-05-19 (금) 정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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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산책] 정열의 가희 이춘희 (2)
1960년 초 한국에서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하자 이에 따라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 연예인이 필요했다. 그동안 설 자리가 없어 미 8군 무대와 야간업소에서 활동했던 가수들이 국내 무대로 복귀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여자 탑 5는 현미, 한명숙, 이금희, 최양숙 그리고 이춘희였다. 현미와 한명숙은 각자의 국내 가요가인 ‘밤안개’와 ‘노란사츠 입은 사나이’가 대성공하는 바람에 국내 가요로 방향을 틀었고, 나머지 3인방인 최양숙은 ‘파리의 다리 및’, ‘사랑의 찬가’, ‘장밋빛 인생’ 등의 샹송으로, 이금희는 ‘Diana’, ‘Sing Sing Sing’ 등의 미국 팝송을, 이춘희는 라틴 송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 트로이카 체제는 한동안 유지되었고, 팬들도 새로운 여성 삼국 시대에 환호를 보냈으며, 이들의 활약은 국내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가져왔다. 아마 이 시기가 방송에서 외국 가요가 가장 활발하게 노래되고 팬들의 호응도도 가장 좋았던 때인 것 같다.

-여성 3인방 체제가 3년 정도 지속된 후 어느 날 갑자기 이춘희 씨가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1963년 초 한국권투협회 임원들과 미국 복싱 프로모터인 William Young이 제가 노래하는 업소에 왔다. 마침 그때 나의 노래를 들은 William Young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미국에 와서 활동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나의 가수 활동은 나아지는 것 없는 똑같은 반복 생활이라 변화가 필요했던 시점이라 주저 없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또 한편으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한번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5년 계약으로 사인했고, 계약 내용은 어머니 생활비 월 200달러, 나에게 월 200달러 지급이었으며 당시의 상황으로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미국에 도착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나를 초청한 William Young이 살고 있는 산호세였다. 그의 자택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거주했으며, 세 명의 자녀와 5명의 양자를 거느린 대가족이었다. 그는 세계 2차 대전 때 공수 부대 요원으로 유럽에서 근무했으며 군 복무 중 부모를 잃은 많은 고아를 보아 그 안타까움을 나누고자 군 복무를 마치고 5명의 양자를 입양한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었다. 산호세에 온 후 멕시칸 나이트클럽에서 라틴 송을 부르면서 미국 활동을 시작했고, 가끔 할리우드에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


-남편이던 Joe Bondi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매니저가 산호세에서 경영하던 극장식 레스토랑 ‘Hawaiian Garden’에 어느 날 Joe Bondi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축하를 위해 방문했다. 그들이 이태리 혈통이라 매니저가 나에게 이태리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하여 이태리 노래 ‘Mama’를 그들 가족을 위해 불렸는데 너무 좋아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Joe Bondi 와 그의 가족들과 친해졌다.

-결혼까지 한 계기는
▶‘Hawaiian Garden’이 시간이 감에 따라 재정 수지가 악화하자 1년 만에 파산 신고를 해 문을 닫고 나의 계약 관계도 볼링장을 운영하고 있던 Joe Bondi에게 넘겼다. 그가 새로운 매니저가 되고 함께 공연도 다녀 더욱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새로운 매니저와의 활동은
▶남편이 새로운 매니지먼트를 시작한 이후 무대를 넓혀 라스베가스로 진출했고 유명한 스타들이 가장 출연하고 싶은 무대 ‘스타더스트’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출연하여 유명세를 탔던 텔레비전 방송국 NBC의 인기 프로그램인 ‘Steve Allen Show’에서 노래했다. (계속)

<정태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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