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넥스트 팬데믹: ‘X 질병’

2023-05-17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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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에 대한 미국의 공중보건비상사태가 5월11일 공식 종료됐다. 그보다 일주일 앞선 5월5일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을 해제했다. 2020년 초 선포된 이후 3년여 만이다. 시작됐을 때와는 달리 너무도 조용하게 종료돼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팠고, 사망했고, 힘든 시기를 보냈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사실은 벌써 작년 말부터 팬데믹이 다 지나간 것 같았다. 공연장, 마켓, 쇼핑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도 마스크를 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백신접종 카드는 더 이상 보자는 데가 없어서 아예 지갑에서 빼버렸다. 여행들은 얼마나 많이 가는지 한국으로 타주로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주말 어머니날엔 집집마다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고 포옹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차고 넘쳤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코로나의 ‘코’자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정상’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이전의 삶은 이제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일단 비상사태는 끝났지만 코비드-19 바이러스는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 독감처럼 풍토병화 돼가고 있다지만 아직도 하루 평균 4,500여명의 코비드 환자가 입원해있고, 일주일에 1,200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의 문제는 이 코로나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또 다른 감염병 대유행이 예고 없이 찾아오고, 코비드보다 훨씬 치명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WHO와 전문가들은 이를 ‘X질병’(Disease X)이라고 부른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X질병’ 후보는 조류독감(H5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가금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겐 전염되지 않지만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포유동물에게 옮겨지기 시작하면 인간 감염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조류는 치사율이 거의 100%, 사람의 치명률은 50%가 넘는다. WHO에 따르면 지난 20여년 동안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이 21개국에서 870명 있었는데 이 가운데 457명이 숨졌다.

이미 영국여우와 수달, 돌고래, 미국회색곰, 카스피해 물개 등 다양한 종의 포유류에서 100건 이상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또 작년 10월 스페인의 밍크농장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일어나 밍크 5만마리가 죽거나 살처분된 사건이 있었다. 밍크는 조류와 사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모두 쉽게 감염되기 때문에 조류-포유류-인간 사이의 전염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넥스트 팬데믹의 시나리오는 자연발생이 아닌 인위적인 생물무기로 인한 감염병의 위험이다. 코비드-19에 대한 중국 우한연구소 기원설이 아직도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나라가 북한이다.

‘포스트 코로나19, 넥스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한 유엔체제의 역할과 책임’이란 제목의 한국 국방부 연구노트에 의하면 북한은 코로나 백신 개발을 이유로 각종 실험 장비를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 장비들이 백신이 아닌 생물무기 개발에 사용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탄저균과 천연두균을 미사일에 탑재하여 사용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가난한 자의 핵무기’로 불리는 생물무기는 제조, 저장, 이동, 사용, 은닉이 쉽기 때문에 미국, 중국, 러시아는 물론 이란, 시리아, 기타 테러리스트들도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변화, 가축의 대량생산 등으로 더 많은 감염병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여기에 ‘조용한 팬데믹’이라 불리는 ‘항생제 내성’까지 더해져 인류의 건강에 한층 더 큰 위협이 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지난해 ‘넥스트 팬데믹을 예방하는 방법’(How to Prevent the Next Pandemic)이란 책을 낸 빌 게이츠는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큰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실패한 경험을 발판 삼아 미래에 닥칠 전염병 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또 같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되며 지금 당장 조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게이츠는 2015년에 “10년 내에 1,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극도로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정확하게 코로나 팬데믹을 경고했었다.

“질병의 발생은 피할 도리가 없지만 넥스트 팬데믹은 인간이 하기 나름이다.” 천연두 박멸에 공헌한 전염병학자 래리 브릴리언트가 한 말이다. 세계적 석학인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의 ‘빨리 감기’ 버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페인독감 팬데믹에서 코로나 팬데믹까지는 100년이 걸렸지만 넥스트 팬데믹은 훨씬 가까운 미래에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에서 700만명, 미국에서만 112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는 우매하고 역사는 반복되지만 넥스트 팬데믹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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