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나는 열 두 명 남짓의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인 사이에 어색함과 조금의 흥분을 감추고 서 있었다. 그 중 오늘 모임을 주도한 한 분이 모두들 와 주셔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 모든 이름이 기억 나지는 않지만, 오늘 모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비슷한 대답을 했다-“너무 화가 나서요.” 나 역시 “저도 다른 화가 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버스에 올라탄 뒤 3시간 여 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해서 그늘에 서 있으면 봄소풍에 온 듯 여유로운 날이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물품을 챙긴 후 걷기 시작하니, 넓게 펼쳐져 있는 잔디밭과 오래된 건물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비싸 보이는 수트와 드레스, 구두와 하이힐 차림으로 서류 가방을 들고 바삐 걸어간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건물을 들어섰다. 이 건물은 바로 텍사스의 수도인 오스틴에 있는 주의회 의사당이다.
내가 이날 의사당을 찾은 이유는 텍사스 주의 상원을 통과한 세 가지 법안 때문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텍사스는 현재 사회적 소수자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 그 중 대학 교육에 특히 연관된 세 가지 법안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특정한 사고를 가지도록 강요하는 것을 막는 SB 16, 다양성, 공정, 포용의 가치가 학생들의 입학 및 교직원을 채용의 결정요소로 작동하는 것을 막고, 또한 대학 공식 커리큘럼이나 과외 프로그램, 선서문 및 성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SB17, 마지막으로 교수들의 정년을 없애도록 주장하는 SB 18 이 그것이다. 이 모든 법안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에서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오스틴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집회 전, 휴스턴의 하원 의원 중 한 명의 사무실로 들어가 간단히 점심을 먹고 기다리기로 했다. 16년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했을 때 국회 의사당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하지만 내가 국회 의사당에 들어가면서 느낀 감정은 확실히 달랐다. 그 전에는 몰랐던 것이나 나에게 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새롭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현재 텍사스 주의회 의사당에는 캠핑이나 응급 순간에 쓸 수 있는 포켓 나이프는 반입이 불가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권총은 반입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남쪽 현관을 통해 들어가서 보이는 테라조 바닥은 여전히 깔끔하고 아름다웠지만, 텍사스 내에서 벌어진 전쟁들을 기념하는 그 바닥이 더 이상 아름답게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내가 알고 있던 텍사스 역사 또한 미화된 것이며, 그 전쟁들에서 텍사스를 위해서 싸웠던 유색인종은 지워버리고 어떤 전쟁은 노예제도를 유지하기 위함 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그 아름다움이 빛 바래 보이기까지 한다.
점심을 먹고 2시에 있을 집회를 위해 밖으로 나가보니 생각보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역시 보수적인 주라서 이렇게 참여율이 적은 건가 라고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학기가 끝난 후 바쁜 시기인 것을 알기에 실망을 거두었다. 내가 더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크게 박수를 치면 될 일이다. 한 시간 반 여를 집회에 참가하고, 학생들의 리드를 따라 휴스턴을 대표하는 하원의원들의 오피스를 돌며 이 법안이 왜 통과하면 안 되는 법안인지를 설명했다. 누구의 경험과 이야기들과 역사를 이 법안들이 막으려 하는 지는 자명하다. 나와 함께 한 많은 유색인종의 학생들은 용감하게도 다양성, 공정, 포용의 가치를 가르치는 수업들과 프로그램, 교수들의 연구가 얼만큼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고, 공동체에 중요한 것인가 쉬지 않고 얘기를 전했다. 처음에는 쑥쓰러워 하며 내뱉은 작은 목소리에 힘과 자신감이 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간만에 마음이 꽉 차고 희망으로 넘실거리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해 처음 하는 일들로 가득 찬 하루였다. 낯선 이에게 우리가 가져온 물과 스낵을 나누는 것도, 말끔한 차림의 사람들이 가득한 의사당에 먼지가 가득 묻은 청바지와 땀으로 밴 티셔츠 차림으로 들어가 열심히 의원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며 다닌 것도, 처음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려 까치발을 들고, 그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에 눈물이 고인 것도 모두 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그 이면에 내가 경험했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한다: 함께 잘 살고 싶은 마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 등등. 그리고 다짐했다. 더 이상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놓치며 살지 말자고.
지난 3년여의 시간동안 칼럼을 써오는 일이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자기 반성과 치유의 시간을 가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어로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이 어떨 때는 영어로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 보다 더 아프고 날카롭게 느껴 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시간과 경험들 덕분에 나는 나에게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인지 더 깊고 넓게 생각하게 되었다. 독자 분들께서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사는 삶을 빚어 가시길 온 마음으로 빌어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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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