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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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2023-04-29 (토) 송윤정 /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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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해진 잔디 위에 불쑥불쑥 올라온 노란 민들레. 3월 중순 한국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하니, 앞마당 곳곳에 핀 민들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천덕꾸러기 같은 손님이지만 노란 꽃이 너무나 싱그러워 미워할 수 없는 민들레. 그래도 곧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작은 곡괭이를 들고 민들레 소탕에 나섰다. 민들레와 잡초가 무성해지면 이 동네 반장 노릇을 하는 이웃집 할아버지가 잡초 죽이는 약통을 들고 나설 터였다.

몇 해 전 한 노인의 소송 기사를 읽고 제초약의 폐해에 눈뜨게 되었다. 민들레와 잡초 죽이는 제초약으로 유명한 라운드업을 자신의 농장에서 수십 년간 사용해 암에 걸린 그는 제조사인 몬산토를 상대로 소송하여 연방법원에서 승소했다. 미국에서 재배되는 옥수수, 면화, 대두 등 거의 모든 경작지에 대부분 사용되는 제초제는 글리포세이트(Glyphosate)라는 성분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성분이 암을 유발한다. 2012년 프랑스 법원에서 처음으로 몬산토가 제조하는 제초약이 암을 유발한다고 판결한 후,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보고서는 이를 입증했다. 하지만, ‘글리포세이트’ 같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화학성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깨알 같은 글자로 잘 안 보이게 붙어있는 라벨을 읽지 않고, 단지 싸고 효과 좋다는 이유로 라운드업과 같은 제초제를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용한다.

나도 예전엔 라벨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친구를 보고 속으로 구시렁대기도 했었다. 의사인 친구와 함께 여행 다니며 장을 보면, 두터운 안경을 바싹 끌어 올리며 라벨에 적힌 모든 성분을 확인하는 통에 시간이 배로 들곤 했다. 글자가 너무 작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각 성분이 뭘 뜻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나로선, 대충 먹고 살아도 될 걸 굳이 저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최근에 <호르몬과 맛있는 것들의 비밀>을 출간한 식품 전문가 안병수 작가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안병수 작가는 유명 과자 회사에 근무하며 자신뿐 아니라 주위 젊은 기술자들도 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이 돈독했던 일본의 한 과자 개발자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16년간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식품첨가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식품 전문가가 됐다. 그는 각종 과자에 들어가는 식품첨가물의 유해성뿐 아니라, 된장과 간장 속에 포함된 유해물질도 지적하며 라벨을 확인하라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된장, 간장은 건강에 좋은 발효식품으로 한국인의 음식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은 싸게 대량 생산하기 위해 각종 화학첨가물을 넣어 만들어지고 그 중 특히 탈지대두는 콩의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그 기름추출 과정에서 화학용 매제 ‘헥산’이 사용되는데 유해성으로 여러 나라에서 식용이 금지되었지만, 한국의 된장, 간장, 고추장 등 다양한 식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질산나트륨 (Sodium Nitrite)이다. 이는 맹독성이 있음에도 방부제 및 식품의 색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 소시지, 베이컨과 같은 대부분의 육가공제에 첨가되는데, 특히 시중의 명란젓에 꼭 들어간다 한다. 그동안 얼마나 즐겨 먹었는데…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어렸을 적 애지중지하던 우리 집 강아지가 여섯 살 되던 해에 갑자기 죽게 되었던 것도 이런 유해 성분들에 대한 나의 무지에 기인한다. ‘코코넛’이라 불렸던 작은 개는 꼭 인형같이 생겼던 하얀 말티스였다. 어느 날 갑자기 시름시름 앓아서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땐 이미 신장이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후였는데, 그 원인을 추적하니 코코넛이 즐겨 먹던 스낵이 문제였다. 네슬레가 중국에서 수입해 코스트코에서 판매한 제품이었는데 그 제품은 멜라민(Melamine)을 포함했다. 멜라민에는 질소 함량이 많아 질소함량으로 검사하는 단백질 농도 측정에 유리해 첨가한 것이다. 멜라민 섭취가 쌓이면 그 작은 결정체들이 신장에 존재하는 소변이 지나가는 관을 막게 되고 이것이 소변의 생성을 막아 신장 기능이 악화되는데, 이로인해 미국에서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신장질환으로 사망해 어떤 지역에선 집단 소송을 하기도 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첨가제. 악마는 그 디테일에 있다 했던가.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 몬산토는 세계 최대 화학업체인 독일의 바스프와 함께 라운드업에 저항력을 키운 잡초들을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화학제인 디캄바(Dicamba)를 개발해 디캄바에 저항력이 있는 유전자변이 목화와 콩 종자를 보급해왔다. 이 디캄바의 폐해를 보고한 2020년 3월 가디언 기사를 뒤늦게 읽으며, 초중고 교육과정에 모든 이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농업이 포함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알아야 보고, 그래야 나와 가족 그리고 세상을 지킬 수 있으니까.

<송윤정 /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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