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최대 채권국 떠오른 중국

2023-04-03 (월)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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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스리랑카 정부는 남부 해안 도시 함반토타에 항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재정 여력이 없던 스리랑카는 중국에 손을 벌렸다. 중국은 3억7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면서 자국 기업의 건설사 선정을 조건으로 붙였다. 스리랑카는 2012년 항구 인근에 국제공항을 짓기 위해 7억7,000만 달러를 추가로 빌렸다. 이후 빚을 갚기 힘들어진 스리랑카는 부채 탕감을 중국에 요청했다. 이에 중국은 대가를 요구했고 결국 중국 최대 해운 그룹인 초상국집단이 항구 지분의 85%를 가져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스리랑카가 중국이 놓은 빚의 덫에 걸려들었다”고 전했다.

중국이 경제난에 직면한 저개발 국가에 2000년 이후 최소 2,400억 달러를 대출해줬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27일 보도했다. 채무 곤경에 처한 나라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늘린 중국은 순(純) 해외 채권 9,000억 달러를 보유한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구제금융은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이후 급증했다. 2021년 중국의 구제금융 규모는 405억 달러에 달했는데 중국보다 더 많은 규모의 구제금융을 집행한 나라는 없었다.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만이 686억 달러로 중국을 앞섰을 뿐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2002년 우루과이(15억 달러)가 마지막이다.

중국의 긴급 대출 대상국은 주로 튀르키예·아르헨티나 등 전략적 요충지이거나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이다. 중국은 도로·항만 등 인프라 건설 지원을 명목으로 차관을 제공하고 상대국의 경제·외교 정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대출의 90%를 위안화로 빌려줘 위안화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채무국들이 위안화를 외환보유액으로 쌓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통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 체제 돌입 이후 더 가속화하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가치 중심의 국제 연대를 강화하면서 과도한 대중 교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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