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외로우니까 싸운다

2023-04-03 (월) 김구태 한국뇌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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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집단 간의 갈등과 혐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20대 남녀의 투표 행태가 정반대로 나온 데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남녀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여당과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이념적 대립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학적 원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테러리즘과 같은 정치적 갈등을 연구하는 아티스 인터내셔널(Artis International)의 최근 연구는 ‘사회적 고립’이 정치적으로 더 극단적인 입장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극단적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개 ‘신성한 가치’를 신봉한다. 종교적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슬람 극단주의 등의 예에서 보듯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신성한 가치가 위협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의지를 보인다. 조금만 생각하면 한국 사회 내의 다양한 갈등의 이면에 이처럼 신성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자유·평등과 같은 사회적 이상, 성 역할, 정치적 리더에 대한 종교화된 믿음과 추종이 건전한 소통과 합의를 어렵게 하고 극단적 갈등을 유발한다.

사람들은 왜 신성한 가치에 헌신할까. 아티스 팀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이 더 심해질수록 신성한 가치를 더 많이 떠받든다. 이슬람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절반은 실험 전 참가한 게임에서 왕따를 당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정상적 게임을 하도록 했다. 이후 두 그룹을 상대로 신성한 가치(동성결혼 금지)와 중요하지만 신성하지는 않은 가치(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사회적 고립을 당한 그룹의 참가자들은 신성하지 않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극단적 행동(자살)을 할 수 있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면 상식적 토론과 합의가 가능한 이슈를 종교적이고 이념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얻는다. 사회적 고립으로 자신의 사회적 의미를 상실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가장 극단적 입장을 보호함으로써 그룹에 대한 소속감과 자신의 존재 의미를 복원하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고조되는 집단 간 갈등을 건전한 소통으로 해소하려면 우리가 의지하고,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강화해야 한다.

<김구태 한국뇌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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