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한데요. 이게 우울증인가요? 조울증인가요?”
우울증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울증(양극성 장애; Bipolar)은 병의 특성상 초기에는 우울증과 구별하기 어렵다. 우울 삽화(Episode)를 1번 이상 경험하고 몇 달, 몇 년이 지난 다음에 조증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에 처음 우울증을 경험한 환자의 20-32%, 20-30세에 처음 우울증을 경험한 환자의 5-15%가 나중에 조울증 진단을 받는다는 게 국립정신건강센터의 통계다.
조증을 겪는 동안 스스로 고양된 기분을 자기 자신은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주변 가족들은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고 걱정하게 된다. 전형적인 조증 삽화가 시작될 때 처음엔 행복감, 자신감에 심취하다가 점점 과민한 양상으로 발전한다. 환자는 머릿속에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떠오르며 과대한 자신감으로 크레딧 카드를 엄청나게 쓴다거나 도박에 큰돈을 걸기도 한다. 조증 시기가 지나가고 우울이 올 때면 기분이 붕 떠서 하늘만큼 올라갔다가 다시금 뚝 떨어져 땅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환자 본인의 괴로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아침에 복권 당첨 됐다가 저녁에 애인과 결별하는 심정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놀이동산의 바이킹을 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극단의 기분이 번갈아 계속된다는 건 더할 수 없는 고통이다.
조울증 진단을 받은 25세 여성 A는 본인의 증상을 이렇게 얘기한다. “고등학교 때 처음 우울을 겪었어요. 무려 21일 동안 침대에 누워있었죠. 손가락조차 꼼짝 할 수 없는 무력감과 부모 이혼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울고 또 울었어요. 근데 실은 그 전 한 달 동안 너무나 명랑하고 쾌활한 여학생이었거든요. 다들 나에게 차밍, 수다쟁이, 재기발랄하다고 말해줬지만 하루 한두 시간만 자고도 피곤한 줄을 모르고 밤새 모든 사람들에게 텍스트를 보내고… 결국 조증 증세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약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였죠.”
A는 대학 3학년에 다시 조울증 재발을 겪었다. 남자친구를 사귀는 동안 적극적으로 성욕구가 일어나 무분별한 섹스를 즐기고 여러 명을 동시에 사귀는 일도 빈번했다. 남자친구들은 처음엔 A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매력을 느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A가 보여주는 돌발적인 사고의 비약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화제가 이리저리 튀는가 하면 빠른 속도로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종잡을 수가 없이 될 즈음엔 결국 헤어졌다. A는 과대한 자신감으로 무모한 운전을 하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아는 사람 집에 불쑥 찾아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빠른 어조로 지껄이다 오기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자책감,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에 실려 갔다.
조울증 환자 5명 중 1명은 자해, 또는 자살을 시도한다. 매년 3월30일은 ‘세계 조울증의 날’이다. 하필 반 고흐의 생일을 조울증 기념일로 정한 것은 그 화가의 작품과 생애가 평생 정신질환과 함께 이어졌고, 결국 조울증 진단을 받았던 당사자이기도 한 까닭이다. 조울증은 쉽지 않은 질환이다. 본인이 비슷한 증세를 경험하고 있다거나 주변에 누군가 떠오른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권해야한다. ‘World Bipolar Day’에, 조울증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정보를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고흐 외에도 헤밍웨이, 처칠, 링컨 등이 조울증을 앓았으며 유명 가수 머라이아 캐리, 데미 로바토 등도 조울증 치료 중에 있음을 밝힌 바 있다.
<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