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재권 회장 보유
▶ 한국의 거친 근현대사 상징하듯 표지는 이미 다 바래…대영성서공회 발간 ‘한글·한자·훈민정음식 표기’ 혼용
이재권(위쪽)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102년 된 성경을 보여주고 있다.(왼쪽). 성경 두 번째 페이지에‘신약전서’라는 제목과 함께 이 회장의 아버지가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쓴 메모가 보인다. [준 최 객원기자]
1921년은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다. 일본 식민지 정책에 의해 사회적·경제적 약탈이 무자비하게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문화와 사상까지 모조리 말살당했다. 1800년대 조선에 처음 유입돼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가장 모진 핍박을 받은 종교다. 이 같은 시련의 시기에 탄생해 무려 100여 년을 굳건하게 버텨온 성경이 있다. LA 한인타운에서 북쪽으로 약 62마일 떨어진 레벡에 거주하는 이재권(87) 씨가 보유한 성경이 바로 화제의 주인공(?)이다.
일제 강점기, 해방, 한국 전쟁 등 한국의 거친 근현대사를 거친 이 성경의 표지는 이미 다 바래 겉으로 봐서는 그냥 오래된 책과 다름없어 보인다. 표지를 펼치자마자 나오는 ‘신약전서’(新約全書)라는 제목을 봐야 비로서 이 책이 ‘성경이구나’ 하게 된다. 또 한 장을 넘기면 역시 한자로 ‘신약전서’라고 선명하게 인쇄된 제목과 함께 오른쪽에 ‘구주강생일천구백이십일년’이라는 발간 시기가 적혀 있다.
‘구주강생’은 예수 탄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경이 발간된 해가 서기 1921년임을 의미한다. 왼쪽 아래편에는 ‘조선 경성 대영성서공회발간’이라고 적혀 있어 경성에 위치한 대영성서공회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발행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성경은 신약본으로 지금의 성경과 마찬가지로 마태복음부터 시작된다. 제목 마태복음 중 ‘마태’는 한글로, ‘복음’은 한자로 인쇄됐고 그 아래 ‘마태의 기록한대로 서한 복음’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는데 ‘기록’, ‘복음’, ‘서’ 등의 단어는 한자로, ‘아’ 발음은 훈민정음 방식인 아래 아 ‘·’가 사용돼 지금으로서는 낯설기 그지없다.
박물관에 보관해도 될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이 성경은 이 씨가 대학에 입학한 1956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성경이 발간된 해인 1921년은 이 씨의 아버지가 아직 어린 아이였던 시기로 아버지 역시 이 씨의 조부모로부터 성경을 받았을 것으로 이 씨는 어림짐작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씨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잃지 않은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모태신앙인이라는 것이다.
1973년 미국 이민 길에 오를 때 이 씨가 가장 먼저 챙긴 것도 다름 아닌 아버지가 물려주신 성경이었다. 힘든 이민 생활 중에서도 신앙에 대한 목마름으로 미주 총신대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했고 동양선교교회에서 장로 직분으로 활발한 봉사 활동을 펼쳤다.
자녀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이 씨는 레벡 지역에서 RV 파크를 운영 중이다. 일요일마다 한인 가정을 대상으로 주일 예배를 진행한 적도 있는데 인근 옥스나드, 발렌시아는 물론 멀리 베이커스필드에 사는 한인 가정도 이 씨의 RV 파크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90을 눈앞에 둔 이 씨는 웬만한 60대 못지않게 활발한 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미주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장으로 이미 수년째 활동 중인 이 씨는 얼마 전 재외동포청 개설 축하 행사를 도맡아 진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100년 넘은 성경을 ‘할아버지뻘’로 치면 이 씨에게는 ‘아버지뻘, 손자뻘’ 되는 성경도 있다. 1963년 당시 황성수 국회부의장으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신구약합본과 1984년 발간된 톰슨 주석 성경 도 이 씨의 책장에 소중하게 간직된 성경이다. 이중 톰슨 성경은 이 씨가 10번 넘게 완독하면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져 15년 전 한국의 한 업체로부터 성경 리폼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9절)는 이 씨가 평생 마음에 새겨 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보는 성경 말씀이다. “기독교는 선을 행하는 종교”라는 이 씨는 “살면서 힘들고, 지치고, 시험 받아 상처가 되더라도 선을 행하려는 마음만 변치 않으면 구원의 결실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에 의지해 매일 매일 긍정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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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