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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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포퓰리스트 선동가와 부정선거

2023-03-20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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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황금기로 들어서는 진입로에 서있다. 수위를 높여가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은 멕시코에게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투자 다변화에 나선 숱한 기업들이 중국에서 멕시코로 발길을 돌리면서 멕시코의 일부 지역들은 이미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경제 훈풍’은 저질 정치에 가로막혀 소멸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멕시코의 최고 통치자로 선출된 정치인들은 - 성공의 정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멕시코의 ‘지도자 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18년 이래 멕시코를 통치해온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 대통령은 라틴 아메리카 역사상 최악의 포퓰리스트 선동가이다.

로페스 오브라도의 코비드 정책은 재앙이었다. 멕시코는 세계에서 코비드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그의 반 성장주의 경제 정책 역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2019년 이후 거의 400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기아의 늪에서 허우적댄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다. 마약 카르텔과의 싸움도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그는 최근에야 비로소 정통성과 본래의 역량을 확보한 일부 국가기관들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가장 위험하다.


20세기의 거의 전 시기에 걸쳐 멕시코는 일당제 국가였다.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집권당은 권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에르네스토 제디요 대통령의 선거개혁으로 멕시코 헌정사상 최초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실시됐고, 집권당은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 이같은 민주화 정신에서 나온 것이 독립적이고 신뢰할만하다는 평판을 얻은 국립선거연구원이다.

바로 이 기구가 로페스 오브라도의 표적이다. 그가 속한 멕시코의 집권당은 지난달 국립선거연구원의 권한을 대폭 약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원래의 의도는 이 기구를 폐쇄하고 다른 기관으로 대체하는 것이었지만 헌법 개정의 요건을 충족시키는데 실패하자 곧바로 선거연구원을 무력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정된 새 법에 따라 선거연구원의 예산은 1/3이 삭감된다. 이에 따른 심각한 예산난으로 연구원의 지역 사무실이 대거 폐쇄되고, 6,000명의 스탭이 감원된다. 대대적인 예산삭감과 권한 축소로 이빨 빠진 감시견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로페스 오브라도는 투표절차를 개선하고 연간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절약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로페스 오브라도는 연임금지 규정으로 재선에 도전할 수 없다. 그가 이런 조치를 취한 이유는 자명하다. 자신이 장악한 집권당의 선거 승리를 통해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가까운 장래에 로페스 오브라도 대통령의 국립선거연구원 무력화 조치에 대한 심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립선거연구원도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제 막 날갯짓을 하는 멕시코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연구원은 군에 이어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신뢰받는 기구로 꼽혔다. 취임 이후 로페스 오브라도는 부패와 인권문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와 독립적인 기관에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국립선거원을 겨냥한 무력화 조치도 이같은 공세의 일부다.

블룸버그의 샤논 K. 오닐은 로페스 오브라도가 예술가와 학자들을 지원하는 공공기금을 삭감했고, 사법부를 무기화했으며 자신의 비판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로페스 오브라도의 재임기간을 살펴보면 페론주의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로페스 오브라도와 페론은 빈민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엘리트를 공격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의 지도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 언론인이 로페스 오브라도의 아들이 미국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하자 그는 해당 언론인의 개인 소득정보를 공개하는 불법적이고 비합헌적인 맞불조치를 취했다. 로페즈 오브라도의 선거공약은 부패와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비정부단체인 ‘부패와 면죄에 대항하는 멕시코인’에 따르면 정부가 발주한 계약의 75%는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은 채 정부에 우호적인 기업에 넘어갔다.

반면 정부는 사실상 멕시코의 상당부분을 ‘실효 지배’ 중인 마약 카르텔을 제어하는데 실패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는 선거전 당시 “총탄이 아닌 포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뒤 마약 카르텔과 관련한 모든 이슈를 마약 카르텔의 검은 돈에 중독된 부패한 군에 떠넘겼다. 지난 2020년 멕시코의 전직 국방장관이 카르텔에 가담한 혐의로 미국에서 체포되자 멕시코 정부는 그에 대한 기소중지를 요구했고, 워싱턴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의 법무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P. 바는 최근 로페스 오브라도를 ‘카르텔의 최고 조력자’로 평가했다. 선거기관에 대한 로페스 오브라도의 공격은 사사로운 측면이 강하다. 그는 2006년과 2012년 대선에서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믿는다. (물론 독립적인 옵저버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취임 이후 자기애적인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매일 몇 시간씩 이어지는 기자회견을 하고, 자신의 권력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을 공격하는가하면 지금은 선거감시기구를 무력화하려 든다. 물론 둘 사이에 이런저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는 멕시코의 도널드 트럼프가 되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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