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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 클래식] 잊혀진 사랑의 옛 그림자

2023-03-17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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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조금 느끼하긴 하지만, 유행가 내용이나 필자의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는 알려져 있다시피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로서 1950년대 황금기를 누리다가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염문 끝에 결국 버림받은 뒤 항우울제 등 약물 과다복용으로 53세라는 나이로 인생을 마감한 여인이다.

마리아 칼라스를 얘기하자면 그녀의 남편 메네기니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메네기니는 마리아 칼라스와 무려 28세나 되는 나이 차가 있었지만 뚱뚱하고 못생겼던 마리아 칼라스의 재능을 첫눈에 알아보고 그녀를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키운 사람이었다. 칼라스는 약관 14세에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을 뛰쳐나와 모국 그리스에서 유학했다. 칼라스가 메네기니를 만난 것은 1947년 나이 24세때 이탈리아 베로나에서였다. 메네기니는 칼라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투박하고 허스키인데 반해 천부적인 잠재력이 내재해 있음을 한눈에 간파했다. 동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였다고나 할까… 가장 개성있고 특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될 것을 확신한 메네기니는 ‘마리아 칼라스’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을 갈고 다듬어 각종 오페라 무대에 데뷔시켰다.

칼라스의 행운은 단지 그녀의 선천적인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베로나에서의 ‘라 지오콘다’라는 무대, 매니저 메네기니를 만난 덕분이었는지도 몰랐다. 일설에 의하면 베로나에서의 그녀의 노래는 이 세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메네기니가 만난 것은 한 사람의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라 ‘라 지오콘다’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였다는 것이었다. 후대에 수많은 소프라노들이 ‘라 지오콘다’에 도전했지만 칼라스와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라 지오콘다’는 단순히 아름다운 목소리만 가지고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야성미, 극적인 깊이가 필요한 작품이었다.


칼라스와 대비되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바로 당시 ‘라 스칼라’ 무대를 휩쓸던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였다. 그러나 테발디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그 영역이 푸치니 등에만 제한되어 있었고 칼라스처럼 ‘라 지오콘다’, ‘라 트라비아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극적인 작품을 소화할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칼라스는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풍부한 목소리를 과시하며 ‘라 스칼라’에 입성했고 테발디는 결국 칼라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뉴욕으로 망명(?)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천하를 제패하게 된 칼라스는 당시 선박왕이었던 오나시스의 눈에 들어 그의 애인이 된다. 그러나 잠깐의 허영… 예술적 성취에 대한 도취는 그 댓가가 너무도 큰 것이었다. 결국 칼라스는 재클린 케네디와의 (애정)싸움에서 패배한 뒤 오나시스에게도 버림받고 지상에서 가장 비참한 여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칼라스가 홀로 되자 주위에서는 다시 메네기니와 맺어주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은 두 사람의 자존심상 용납할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칼라스도 무리한 감량, 건강악화 등 목소리의 쇠퇴를 이겨내지 못하고 잊혀진 사랑의 옛 그림자를 추억하면서 1977년 파리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 등으로 53세로 쓸쓸히 사망하고 만다.

우리 집에는 드물게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라 지오콘다’ 스테레오 LP판이 있다. 칼라스는 1950년도에 그 전성기를 보냈기 때문에 스테레오 판이 많지 않지만 그 LP판은 나를 칼라스와 만나게 해준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였다. ‘라 지오콘다’ 속에서 만난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는 과연 세기의 디바라는 명성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어딘가 앙칼지다고 할까, 그러나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고 혼을 다해 부르는 목소리가 폐부를 가르는 감동이 있었다. 왜 메네기니가 처음 칼라스의 노래를 듣고 반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칼라스의 목소리는 분명 일반적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딘가 이단적인 요소가 있었다고나 할까. 즉 선을 넘으려는 그런 동물적인 몸부림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칼라스를 칼라스로 만든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는 했지만 그녀의 노래는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그런 목소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앙칼지고 개성이 넘쳐났다. 굳이 비교하라면 오페라에서의 엘비스 프레슬리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녀의 도전적인 목소리는 다소 불안하고 비극적인 요소도 함께 있었는데 그녀가 나중에 힘센 남자들 사이를 전전하게 된 것도 그녀의 여성적인 나약함과 더불어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욕망… 내면의 불안도 한몫했던 것 같다. 아무튼 칼라스는 인생에서 두 명의 남자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한 명은 그녀를 예술가로 만들어 주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를 여자로 만들어 주었으니 그 어떤 만남이 잘된 만남이었는지는 우리의 판단을 유보하게 하곤 한다.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다. 그러나 인생도 예술도 사랑의 모습을 빼고는 모두 허무한 것이고 보면 인생과 예술… 이 둘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인지도 모른다. 만약 칼라스가 메네기니와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살았다면 어땠을까? 칼라스의 사후에도 칼라스의 예술을 발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메네기니…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는 칼라스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왠지 ‘라 지오콘다’의 노래 속에서 안타까운 인생의 이야기… 한이 되어 삶에서의 잊혀진 사랑의 옛 그림자를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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