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전쟁 같은 삶

2023-03-04 (토) 이은정 /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크게 작게
3월이 되면 1주일여의 방학이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들뜸과 기대감으로 가득차서 하루 하루를 살게 된다. 특히나 올해는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더 꼭 붙잡고 있다. 얼마 전, 3년만에 처음으로 대면으로 참석한 학회에서 팬데믹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동료들과 친구들을 마음껏 껴안고 함께 보낸 시간으로 얻은 에너지가 내 마음을 ‘온 세상이 아름다워’ 모드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설렘과 들뜬 마음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일 때문에 바빠서”라는 핑계로 마음 한 켠으로 잠시 미루어 둔 일들이나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완전히 마음을 쏟지 못한 일들이 나에게 손짓을 보내온다. 보통 그런 일들은 덥수룩 해져버린 머리를 자르러 가는 일이나, 친구들을 위해 미처 제때 보내지 못한 카드나 선물 보내기, 혹은 보고 싶었던 전시나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를 빌며 그에 대한 이메일들을 체크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올 해는 내 마음속에 자리한 대 부분의 일들은 안타깝게도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고, 나 혼자서는 해결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텍사스에서는 최근 아시안들을 포함해 소수자들의 권리를 짓누르는 법안이나 정책들이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다. 텍사스 공화당 의원인 로이스 콜코스트는 최근 SB147, 즉 북한, 중국, 이란, 러시아 국적의 개인이나 회사, 또는 정부 단체가 텍사스 내에서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 했다. 텍사스 주지사인 그렉 애벗은 다양성, 공정, 포용 정책(Diversity, Equity, Inclusion policy)이 사실상 불법이며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텍사스 주의 공립대학 내의 인사결정에 이 정책이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2년여간 극우성향의 정치인들과 미디어에서 잘못된 정보로 둔갑시켜 끈질기게 비방하고 백인들의 분노를 조장하게 한 비판적 인종 이론 (Critical Race Theory)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텍사스는 이 이론에 대해 가르치는 어떠한 교사나 교육자도 진급이나 정년 보장을 받을 수 없도록 조치했다. 퀴어나 트랜스 커뮤니티들의 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발의된 30여개들의 법안 중에 몇개만 예를 들자면, 트랜스 아이들은 스포츠에 참여 할 수 없고, 그들의 성적 권리와 정체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제공하는 돌봄은 범죄화 되어, 보고가 필요하고 감시 당해야 하는 일들이 되고 말았다.


지난 몇년간 소수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발생하고 증가해온 증오범죄 및 폭력들을 보며 이것이 전쟁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존재를 긍정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법안들과 정책들은 외려 폭격처럼 나를 공격해 온다. 우리는 언제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제조하고 있고, 발사 할 계획이 진행중에 있으며, 떨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을 알고는 있지만 멈출 수 있는 방법이 희미해 보이는 폭격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터키의 대지진으로 사망하고 부상을 입은 이들의 삶과 감히 비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결코 아니다. 피를 흘리지 않았다고 해서,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이 덜한 것은 아니다. 왜 어떤 이들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다른 이들을 파괴하기 위해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이리도 열심히 쏟는다는 말인가?

지난 2년간, 아시안 및 아시안계 미국인들 또 그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비영리 단체들이 우리를 향한 폭력과 증오범죄에 맞서 함께 저항해왔다. 그 힘과 에너지 덕분인지 아시안들을 향한 증오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미디어에서의 관심과 아시안들의 등장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한 편, 폭격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제 막 시작인 기분도 든다. 애틀랜타 총격 난사 사건 2주기를 목전에 둔 지금, 이 전쟁 같은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나를 웃게 해 준 친구들의 얼굴을, 그들을 껴안을 때의 차 올랐던 기쁨의 눈물을, 그리고 나의 전쟁이 나만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전쟁이라고 얘기해주는 그 눈빛들을. 이것들 만이 이 전쟁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은정 / 휴스턴대학교 조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