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앵콜 클래식] ‘K-클래식’은 없다(?)

2023-03-03 (금)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뉴욕 필을 이끌던 얍 판 츠베덴이 차기 서울 시향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다. 츠베덴은 2024부터 향후 5년간 서울시향을 이끌 예정이다. 정명훈 이후 서울 시향을 업그레이드시킬 지휘자를 찾던 시향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추후 츠베덴에 대한 음악계의 관심이 뜨거울 예정이며 홍콩 필, NHK 등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시향의 명성도 이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서 손색없는 면모를 갖추게 됐다. K-pop과 K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도 이제 이름값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K 클래식이라고 언제까지나 변방에 머무르란 법은 없다. 더욱이 조성진, 임윤찬, 양인모 등 뛰어난 연주자들이 최근 쇼팽 콩쿨, 반 클라이번, 시벨리우스 콩쿨 등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K 클래식의 명성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K 클래식의 성장세에 비해 K 클래식의 인구가 여전히 빈약하다는 것이다. 몇 해 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클래식 인구는 음반 등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음악회 등을 고정적으로 출석하는 마니아층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인구의 약 0,16%에 해당하는 9만 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한다. 조사 방법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필자가 성장할 때만 해도 주위에 클래식 인구가 전무했던 것을 보면 한국의 클래식 인구는 오차범위 내에서 10만 명 내외에 불과할 것으로 추측된다. 즉 한국이야말로 클래식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동네라는 뜻이다. 일본은 음반 판매의 약 3% 정도 이상을 클래식 음반이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일본 등과 비교하며 한국의 열악한 클래식 시장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K 클래식의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얼마 전 KBS TV에서 방영된 ‘K 클래식은 없다’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한국 클래식 교육의 문제점을 짚은 프로그램으로서 세계대회에 나가서 수많은 우승자를 배출한 한국이 정작 클래식을 좋아하는 인구는 없고 오직 경쟁적인 음악교육만 난무하고 있다는 현실을 꼬집은 프로그램이었다. 독일 같은 곳에서는 학생의 스킬이나 테크닉보다는 학생의 음악성과 음악에 대한 관심 등에 초점을 두는 데 비해 한국은 시험(콩쿨) 통과 목적을 중심으로 음악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릴 때 영재 학교에 입학하거나 금호 재단 등이 실시하는 영재 발굴 시스템에 뽑히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는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연습에만 집중하다 보니 스트레스 만땅에다 종합적인 음악 교육은커녕 오히려 클래식을 즐기는 분위기를 저해하고 만다는 것이다. 즉 동반자로서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오직 경쟁을 목적으로 한 냉혹한 한국 음악교육의 미래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은 1991년 이어령 교수(당시 문화부 장관) 등의 추진으로 한국 예술 영재 교육원(한국 예술 종합학교 산하) 등을 설립,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영재들을 중점적으로 육성해 왔다. 덕분에 한국 음악도들은 지난 60여 년간 세계 대회에 나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160회 이상의 콩쿨 우승자를 배출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처 그리고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한국은 순풍에 돛단 듯 문화 강국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KBS의 지적처럼, 경쟁 구도 일변도 속에서의 K 클래식의 미래는 요원할 것이다. 각자의 자율성, 다양한 삶의 개성 있는 모습이 녹아들지 않은 감동적인 음악은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열악한 (클래식) 환경 속에서 음악도들이 콩쿨 외에 다른 성장 기회를 잡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클래식 인구의 저변확대… 그리고 K 클래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것이 K 클래식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고전 음악이라는 것은 긴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예술을 말하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가 도전하다 빠져 죽고 살아남음을 반복한 가운데 여태껏 살아남아 교훈을 주는 그런 가치 있는 작품을 말하고 있다. 음악은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며 품격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가슴이 뛴다고 해서 모두 같은 예술은 아닐 것이다. 흥행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소모품이지 예술이 아니다. 왜 우리는 (고전)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KBS가 꼬집고 있는 것은 한국 음악 교육의 경쟁의식이지만 음악의 생활화, 클래식 동호회처럼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생활화되지 않고는 K 클래식의 밝은 미래 역시 요원할지도 모른다. 고전음악은 꼭 직업 음악가가 되려는 목표가 아니래도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필요한 문화 활동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이제 뉴욕 필의 지휘자를 데려오는 등 점차 세계 클래식의 강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공연의 질적 향상은 곧 관심받는 ‘K 클래식’으로 이어진다. 이제 즐기는 K 클래식… 그 밝은 미래를 소원해 본다.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