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한국 방송에서 가요 오디션 프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는 가수가 되려는 젊은이가 왜 그리 많으며 실제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어쩌면 그렇게 많은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 달 중순 거기서 배출된 가수 임영웅이 LA 돌비 시어터에서 폭발적인 공연을 마치고 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나는 오디션 프로에 나왔던 노래 가운데 좋은 곡이 있으면 따라 부르면서 가사를 외운다. 기억력을 지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인데 최근에 외운 ‘붓’이란 노래도 그 중의 하나다.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 보니 오늘 같은 날도 있구나’ 남북화해를 염원하며 만든 곡이라는데 그 노래 세 번째 소절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칠십년 세월 그 까짓게 무슨 대수요, 함께 산건 오천년인데--’
분단 70년의 세월이 한스럽지만 같이 살아온 긴 역사가 있으니 곧 그런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소원이 담겨있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무슨 대수라고 백성들의 삶과 농촌개혁은 버려두고 있는 북한이나, 동맹 한국의 숙원과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는 외면한 채 강대 강 대결로 돌아선 미국이나, 한반도 평화에 역기능이 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대수’라는 말은 대단한 것, 최상의 일, 자주 하는 일을 말하며 ‘대수롭다’라고 하면 ‘중요하게 여길 만하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 하면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다거나 아니면 아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 라는 내용도 된다.
지난 주 ‘천사의 도시’에 사는 내 자부심에 먹물을 끼얹은 사고가 있었다, 안전하게 여겨 마음 놓고 맡겼던 대형 유료 주차장에서 아끼던 자동차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경찰이 신속하게 움직여줘 다음 날 아침 20마일 떨어진 길가에 버려진 자동차가 인근 토잉 회사에 와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달려가보니 자동차 겉모습은 멀쩡했으나 요즘 절도단들의 표적물이라는 ‘촉매 변환기’를 비롯해 자동차 내부를 대청소하듯 깨끗하게 휩쓸어가고 말았다. 하룻밤 새 바뀐 흉물스런 모습에 분통이 터졌다, 그러나 돌아서서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3년간이나 창궐했던 전염병 기간에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그까짓 자동차 하나 실물수(失物數)가 무슨 대수라고-.
그 일 뒤 첫 주일아침 목사님의 ‘삶의 응원자가 되자’는 말씀이 귀하게 들려왔다. 말씀 첫머리에 지난 2009년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에서 ‘I dreamed a dream’을 불러 스타가 된 평범한 여인 수잔 보일의 경우가 소개되었다. 그녀가 어렸을 적 어머니가 격려해줬던 말 ‘못 생긴 게 무슨 대수냐, 너는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는데’ 그 한마디가 수잔 보일의 성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야말로 국민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걸핏하면 자기편도 적으로 몰아세우며 힘없는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고발하고 압수 수색하는 사람이 있다면 ‘권력은 잠시잠간인데 그까짓 게 무슨 대수라고-’ 라는 조롱을 받아 마땅하다, 그에 맞서 당 대표 지키기에나 매몰돼 제 역할은 못하고 허둥대는 야당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3.1절 아침이다. 나라 잃고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며 응원했던 그 때 참 지도자들이 그리워진다.
<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