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 윤씨 부인 묘역에서
꽃봉오리 갓 올라온
할미꽃 몇 뿌리 캐어
모종삽에 받쳐 들고 오는데
산비알 밭에서
밭갈이 하는 어미소 따라
엇송아지 한 마리가
강중강중 뛴다
저승의 무덤 떠나 이승의 꽃밭으로
이사 가는 줄도 모르는
무심한 할미꽃이
젖 보채는 엇송아지를 보다가
꽃샘 바람에 고뿔 드셨나
고개를 갸옷갸옷 흔든다
‘할미꽃’ 오탁번
만물의 어머니인 태양의 눈빛에 차별이 있으랴만, 봄볕은 언제나 무덤부터 먼저 내린다. 둥글게 나무들 베어낸 자리에 봉긋하게 솟은 봉분에 가장 먼저 겨울눈이 녹는다. 겨우내 떨던 고라니며 토끼들이 누워 해바라기를 즐겨하는 곳도 무덤가이다. 자릿세라고 저마다 콩자반 같고 동그랑땡 같은 경단을 진설하기도 한다. 양지바른 무덤가에는 봄꽃도 가장 먼저 핀다. 할미꽃이 피고, 제비꽃이 피고, 양지꽃이 피어난다. 저승에서 잘 살던 할미꽃을 굳이 이승으로 보쌈 하더니, 팔순의 시인은 며칠 전 저승으로 가시었다. 할미꽃이 쓸 조바위를 가지러 갔을 것이다. 반칠환 [시인]
<오탁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