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미국의 최상위 기부자들은 대부분 알려진 이름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 등이 단골 거액 기부자들이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지난해 미국의 개인과 부부 큰 손 기부자 순위에 다소 의외의 이름이 보인다. 재클린과 미겔 베이조스 부부가 곧 그들이다. 7억1,000만달러를 기부해 5위에 랭크돼 있다. 지난해 기부 총액 4위였던 워런 버핏 보다는 5,000만 달러가량 적으나,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보다는 3억달러를 더 기부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부모. 최고 갑부 중 한 사람인 아들의 이름은 기부 순위 탑10에서 빠진 대신 부모가 들어가 있다. 아들이 부자면 부모도 부자가 되는 것인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예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전기를 보면 스티브 잡스가 엄청난 부를 쌓은 후 아버지 잡스에게 북가주의 몇 십만 달러 집을 사줬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그 외는 알려진 것이 없다.
베이조스 가문도 천억장자(centibillionaire) 아들이 부모에게 거액을 증여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부모 역시 억만장자이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재산은 지난 2018년 당시 300억달러가 넘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한다.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투자 성공 때문이었다. 이들 부부는 투자금 1센트 당 1,200만달러의 투자 수익을 거뒀다. 투자 수익률을 따지면 무려 12억배가 된다.
아마존 창업을 준비하던 지난 1990년 대 중반 아들 제프는 부모에게 새로 시작하는 인터넷 사업에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 부담이 큰 투자였다. 후일 제프 베이조스가 CNBC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 투자는 그 자신도 70% 정도는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는 아마존이 창업되던 지난 1995년, 아들 회사에 기꺼이 24만5,000달러를 댔다. 이 회사가 4년 뒤 90억달러, 지난 2020년에는 1조달러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들 부부가 가진 아마존 주식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들은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투자라기 보다 실상 아들의 창업자금을 댄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이들의 가족관계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됐지만 제프 베이조스는 뉴멕시코 앨버쿠키의 10대 고교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재클린이 17살, 생부는 18살. 10대 부부는 아들이 채 한 살 반이 되기 전에 갈라섰다.
그후 어머니 재클린은 야간학교에서 만난 쿠바 이민자 미겔 베이조스와 재혼했고, 제프는 의부의 성을 따랐다. 친자식은 아니었으나 이들의 부자 관계는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프 베이조스는 아버지를 그와 그들 형제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16살 때 쿠바에서 탈출해 온 아버지 베이조스는 성실하고 근면한 이민자였다. 그의 생부는 제프가 3살 때 생모와 함께 그가 일하고 있던 월마트에 온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마존의 성공신화가 관심을 끌면서 전기 작가들이 텍사스 휴스턴에서 자전거 포를 하고 있던 그를 찾아내 인터뷰를 요청할 때까지 그는 아들이 아마존 창업자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생부는 아들과 재회하지 못한 채 지난 2015년 사망했다.
지난해 미국의 50대 개인 기부자들이 각종 공익 사업과 자선사업 등에 기부한 돈을 더하면 모두 160억달러. 전체 기부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개인 기부 1위는 빌 게이츠로 51억 달러, 2위는 테슬라 창업자 앨런 머스크 19억달러, 3위는 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17억달러 등의 순으로 나와있다.
재클린과 미겔 베이조스 부부는 지난 여름 한 부동산 전문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다. 리얼리티 TV시리즈 ‘리얼 하우스와이브스’에 나왔던 마이애미의 저택을 4,400만 달러에 사들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에 나와 있지도 않았던 테니스 코트 2면과 3,000병 규모의 와인 저장고를 갖춘 물가의 호화 맨션을구입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 더 많은 거액을 기부했다. 거부의 돈 쓰는 법을 보여줬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