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 클래식] ‘몰다우’의 나비효과
2023-02-17 (금)
이정훈 기자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를 듣고 있으면 두 개의 강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눈으로 보는 강, 아름다운 몰다우이며 다른 하나는 스메타나의 가슴 속에 흐르는 영혼의 강이다. 몰다우(체코명 블타바)는 아마도 첫 번째의 강, 아름답고 장쾌하게 흐르는 체코의 대표적인 강의 모습만 표현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명곡으로 사랑 받지 못했을 것이다. 몰다우가 몰다우가 된 것은 체코의 강 몰다우 때문이 아니라 몰다우에 흐르는 스메타나의 영혼 때문일 것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 세상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승의 강이라는 표현을 쓰면 조금 섬뜩하겠지만 아무튼 이 세상에는 세상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은 솔직히 몰다우에는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스메타나라는 음악가의 영혼이 표현된 모습이기 때문에 꿈의 모습이지 실재하는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영원의 강’ 이라고나 할까. ‘영원’이라는 문자 표현은 천국 혹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그곳(영혼의 세계)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 영원은 진실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인간은 진실을 찾지만,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 없는 사랑, 진실이 없는 우정, 진실이 담기지 않은 선물… 모두가 가짜다. 진실은 오직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이 지향하는바 궁극적인 아름다움 또한 진실을 표현하는 것 외에는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없다. 음악의 감동은 진실의 감동과도 일맥상통하며 그것은 음악의 특성상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은 문자로 남거나 그림 혹은 조각(건축) 등 형상으로 남지만, 시간의 예술 음악만큼은 오직 산화의 예식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신에게 번제 예물을 드리는 것은 물질을 통해 신과 교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물을 태워 먼지로 날리면서 자신과 신과의 합일, 즉 영원을 추구하는 모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원의 본질이 와 닿지 않는 진실이란 없기 때문에 오직 자신을 태울 때만이 우리는 신과 만나는 영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음악의 최상의 가치는 시간 속에서 태워지는, 즉 진실이 와 닿는 감동이다. 그러므로 음악의 나비효과는 단순히 하나의 악기가 부딪혀 내는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드리는 번제, 진실이 일으키는 긍정적인 스파크를 말한다.
스메타나의 ‘몰다우(교향시 My Fatherland)’에는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있다. 베토벤의 음악도 있고 브람스, 모차르트도 있는데 왜 스메타나의 음악에만 나비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스메타나의 개성이나 그의 예술성 때문이 아니라 주제의 선명성 때문이다. 음악은 대체로 추상적이지만 ‘몰다우’는 분명 My Fatherland… 즉 체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의지가 천명돼 있다. 때로는 메시지의 아름다움이 음악 자체보다도 중요한 경우가 있다. 아마도 스메타나의 교향시 My Fatherland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이 음악은 단순히 음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조국(祖國)이라는 문자를 대두시켜 인간과 음악… 예술이 ‘향토애’라고 하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애국심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산화되는, 희생의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애국심이란 본래 자연이 부여한 초월적인 감정이며, 애국 투사에게 나라를 위한 진심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일 것이다. 스메타나의 예술이 감동을 주는 것은 비록 음악이긴 하지만 그 속에 향토애라는 진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아무나 가능한 일은 아니었고 스메타나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스메타나는 자신의 나이 50세 때 청각이 상실된 뒤 남은 인생을 조국 체코를 위한 교향시 My Fatherland 작곡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매년 5월이 되면 체코에서는 ‘프라하의 봄 음악제’를 통해 ‘My Fatherland’를 연주하며 애국심을 고취하곤 한다. 특히 1990년 공산주의에서 해방된 프라하의 봄에서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이 ‘나의 조국’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다. 신이 인간에게 음악을 준 것은 어쩌면 단순한 인지능력으로 와닿는 음악의 향락뿐 아니라 스메타나의 경우처럼, 눈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은 실재하는 내면의 가슴앓이… 실존하는 인간들의 恨, 고통을 승화시켜 음파라는 그 의미심장한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인간이란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섭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순히 귀로 듣는 ‘몰다우’는 아름다운 선율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몰다우’ 속의 스메타나의 영혼을 마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음악이기도 하지만 스메타나라고 하는 한 작곡가 개인이 느낀 이상이며 사랑이고 극복이고 환희이며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진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과연 진심 없는 감동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 없이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음악이 주는 나비효과… 그것은 하나의 음악이 우리에게 각성시키는 일상의 회복이며, 삶과 존재에 대한 감사의 나비효과이기도 하다.
<이정훈 기자>